설교

[스크랩] 구약성경 요약설교 255편 [잠언---->말라기 50편]

은빛그레이스 2010. 8. 21. 01:25
구약성경 요약설교 255편 [잠언---->말라기 50편]


    구약성경 요약설교 255편 [잠언---->말라기 50편] .......<<잠언>>.............. ▶ 208.지혜추구의 유익 잠3:1-10 솔로몬은 지금까지의 지혜추구에 대한 포괄적인 진술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실질적인 지혜추구의 방법 즉 여호와를 경외하는 방법과 그 결과에 대한 진술로 변화하고 있다. 이는 순종과 신뢰와 경배를 제시하고 있다. 지혜추구의 유익은 1.장수와 평강의 유익이 있다. 하나님의 법을 잊어 버리지 않고 이를 마음으로 주의 명령을 지키면 그것이 장수하여 않은 은혜를 누리게 하고 평강을 더 하게 한다.또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의를 선물로 받으며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룬 자가 된다. 그리하여 주를 믿고 영접한 사람은 영생을 얻고 주님이 주시는 평강을 얻게 된다. 2.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는 유익이 있다. 이는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네 목 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면 된다. 그것은 사람들을 대할 때에 자비로운 마음을 가지고 대하며 약속한 것은 그대로 지키고 주어진 일을 성실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과 진실하심을 굳게 믿고 사람들을 대 하면 하나님과 사람앞에서도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는다. 3.하나님의 지도를 받는 유익이 있다. 우리 인간은 미지의 세계를 향하여 나아가는 자이다. 그러면서 나약한 자이다. 고로 항상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하는데 그 러기 위하여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의뢰하고 자기 명철을 의지하지 않고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면 전능하신 하나님께 서 우리의 앞길을 인도하시고 형통한 자가 되게 하신다. 4.골수로 윤택하게 하는 유익이 있다.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고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에서 떠 나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한다고 했다. 또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 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 라고 했다. 곧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건강이 넘친다. ▶ 209.성도들에게 닥아오는 유혹 잠4:10-27 신앙생활을 잘하던 자도 중간에 넘어지는 자가 있다. 이것이 말세를 만난 우리들에게 거울이 되고 경계가 된다고 하였다.이들은 자기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다가 실족하게 된 것이다. 이와같이 성도들에게 닥아오는 유혹은 1.물질에 대한 탐욕이다. 아간이 여리고성의 전투에서 노략한 전리품 가운데 외제옷과 금과 은을 훔친죄로 인하여 일가족 전체가 아골골짜기에서 돌에 맞아 죽게 되었다. 나아만장군에게 거짓말을 한 게하시가 은 두 달란트와 옷 두 벌받는 것으로 인하여 평생 문둥병자 가 되었다. 가룟유다도 은30에 예수님을 팔다가 자살하여 죽고 말았다. 재물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되니 깨끗한 생활을 하자. 2.이성에 대한 탐욕이다. 삼손이 들릴라라고 하는 블레셋 여인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 하다가 두 눈이 뽑히고 이방나라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다윗도 밧세바의 아름다움에 유혹되어 간음죄에 살인죄까지 범하게 되었다.솔로몬도 이방여인들을 많이 두고 결혼하여 이방신상 을 예루살렘에 두게 하여 결국 나라가 둘로 갈라지게 하였다. 3.교만으로 인한 결과이다. 사울왕과 웃시야왕과 느브갓네살왕이 교만하다가 넘어졌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교 만한 자를 물리치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하였다. 우리는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서로서로의 발을 씻겨주는 겸손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4.사람의 말을 들은 결과이다. 아담이 하와의 말을 듣다가 죄를 짓고 아브라함이 사라의 말을 듣다가 넘어졌다. 백부장도 바울의 말보다 선주나 선장의 말을 듣다가 풍랑을 만나 고생하였다. 장정이라도 넘어지고 자 빠지되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고 독수리의 날개 침같고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않고 걸어가도 피곤치 않는다. ▶ 210.맡기는 원인 잠16:1-9 우리 인간은 연약하기에 창조때부터 하나님을 의지해야할 존재로 만드셨다.주님은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라고 하셨다.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이루시고 경영하신다고 하셨다.또 하나님께 맡길 때에 가장 안전하고 든든하다.왜 맡겨야 하는가? 1.하나님앞에 의인이 없기 때문이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셨다.이는 아담 이후로 날마 다 죄 가운데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 전부 알고 계신다. 고로 우리가 하나님께서 보내 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모든 죄의 문제를 맡기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기 때문이다. 2.하나님께서 이루시기 때문이다. 인간이 모든 계획을 세우고 시작은 할 수가 있으나 그 일을 완성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고로 이땅에서 실패한 자는 모 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위를 바라보고 하나님으로부터 해 답을 찾아야 한다. 실패는 누구나 있을 수가 있다.그러나 실패 자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 데에 있다.문제가 있는가? 하나 님께서 이루실 것을 믿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자. 3.화목의 비결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 목하게 하신다.고로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한다.그리고 하나님과 이웃과 화목하게 하기 위해서 화목제물 을 드려야 한다. 그리하면 하나님과의 사이도 좋아지고 이웃과 의 사이도 개선되고 좋아진다는 것이다. 고로 하나님을 기쁘시 게 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맡기자. 4.인생의 걸음을 인도하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의 길을 인도하시는 분은 누구인가? 그 분은 하나 님이시다.그 분은 우리의 걸음마다 동행하시고 이끄신다.고로 그 하나님께서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한 우리는 부족함 이 없다. 모든 응답이 있다. 마음에 경영을 시작했는가? 맡기자. ▶ 211.모든 것을 이루려면 잠16:1-4 우주에는 분명한 법칙이 있다. 해가 뜨고 지는 데에도 씨를 뿌리고 거두는 데에도 다 뜻이 있다.이를 알지 못하면 우리는 불안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이와같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데에도 법칙이 있다.이 모든 것을 이루려면 1.하나님을 믿자. 하나님은 복있는 자를 말씀하시면서 피할 것과 취할 것을 말 씀하셨다.우리 인생의 아름다운 생을 위하여 피할 것을 피하 고 취할 것을 잘 취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들의 백합화를 키 우시고 공중의 새를 먹이신다.열쇠는 여는 자에게 엄청난 보 화가 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니 이를 믿자. 2.맡기는 것이다. 마음에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고로 염려 근심 모든 문제를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해 서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고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다.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하신다.먹을 것,마실 것,입을 것, 몸과 목숨을 위하여 염려하는가?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자. 3.우선 순위를 바로 정하자. 모든 것에도 순서가 있다. 하나님께서 온갖 것을 씌움에도 적 당하게 지으셨다.악인도 악인의 날을 위하여 적당하게 하셨 다.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성패와 운명이 바뀌게 된다. 이것은 어려운 것일 수도 쉬운 선택일 수도 있다. 어떤 목표 어떤 방법이냐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난다.또한 얼마만큼 중요 하냐에도 다르다.우리는 먼저 하나님편에서 순서를 정하자. 4.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공급받자. 맡기면,정하면,하나님께서 이루신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그것도 넘치게 허락하신다.하나님의 믿음 능력 특별한 은혜를 주신다.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신다.주님은 구하기 전에 아시고 주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세상 것으로만 살지 말고 하나님의 것으로만 살자. ▶ 212.마음을 다스리는 자 잠16:24-33 도둑이 남의 집에 물건을 훔치러 들어가면 그 집의 신발이 잘 정돈되었는가를 본다. 그것은 잘 정돈된 집은 내부도 정돈이 잘 된 집이기 때문이다. 사람도 마음이 잘 정돈된 자는 평안과 기쁨이 있고 맡겨진 임무를 잘 감당한다.마음을 다스릴려면 1.본능을 잘 다스려야 한다. 모든 생명은 본능을 지녔다.그 본능에 따라 살고 질서를 유지 하는데 그 본능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며 행복하게 살게 한다. 그런데 이를 다스리는 것은 인간이다.이를 어떻게 다스리느냐 에 따라서 행복한가 아닌가를 평가한다. 우리는 말씀으로 성령 으로 본능을 잘 다스리자. 2.생각을 잘 다스려야 한다. 생각은 행동은 습관은 사상은 운명을 낳는다.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된다.건강을 생각하면 건강한 자가 된다. 환자처럼 생각 하면 환자처럼 된다. 착한 사람,부자,거지,신사,탕자,영웅처럼 생각하면 그대로 된다.또한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감정 생각 행동을 다스리면 예수님과 같은 훌륭한 인격자가 된다. 3.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 인간의 교만과 욕심과 모든 것은 마음에서부터 온다. 평안과 즐거움과 기쁨도 마음에서부터 온다. 고로 세상의 모든 것은 다 빼앗겨도 마음을 빼앗기면 아니된다. 왜냐하면 마음을 지키 면 나의 행동이 바로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음을 하나님의 평강으로 신령한 생각으로 지켜야 한다.그리하여 죄가 들어오 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4.양심을 잘 다스려야 한다. 양심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는다. 그리고 믿음의 배가 파선 한 것과 같다. 사람이 양심을 잃으면 죄를 짓게 되고 가정이 파탄되며 도덕과 윤리가 무너진다.고로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 을 잘 다스려야 한다. ▶ 213.생활에서 필요한 것 잠22:1-4 성도들의 삶에서,신앙생활에서, 가정생활에서 필요한 것이 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가는데에 필요한 것이다.그렇다면 어떠한 것들이 생활에서 필요한 것들인가? 본문을 통하여 알아보고 은혜를 나누는 시간이 되자. 1.육신을 위해 건강과 재물이다. 사람이 사는 동안에 필요한 것은 건강이다. 이를 위해 늘 기뻐 하고 감사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지켜야 한다.또한 재물도 필 요한데 이를 위해 건전한 직업을 가지고 근면한 생활도 해야 한다. 재물얻을 능력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깨닫고 늘 감사 하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한다. 계획은 사람이 세워도 이를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신 것을 알아야 한다. 2.정신을 위해 지식과 명예이다. 지식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부지런히 배워야 한다. 명예를 얻 기 위해 선을 행하고 덕을 끼치는 일을 행해야 한다. 사람이 아무리 많은 돈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선한 인격이나 돈을 선용하지 못하면 수전노로 살든지 나쁜 짓만 하다가 망하게 된다. 고로 바르게 살기 위한 지식이나 명예도 필요하다. 3.바른 삶을 위한 사랑이다. 아무리 좋은 은사나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이를 행할 수 있는 사랑이 없으면 아니된다. 고로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 도 아닌 것을 소유하지말고 사랑을 행함으로 값어치가 있는 것을 소유해야 한다. 그리하여 부분적으로 알던 모든 것이 온 전하게, 장성한 모습으로,얼굴을 직접 보게 해야 한다. 4.영혼을 위해 영생과 은총이다. 영생을 위해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은총을 받기 위해 하나님 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고 은혜를 구해야 한다. 온 천하를 얻는다고 하여도 생명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또한 아무 리 뛰어난 기술이나 권세나 도덕심을 가지고 있어도 스스로 의 힘으로 구원을 얻을 수가 없다. 주의 은총이 있어야 한다. ▶ 214.어른은 아이에게 잠22:6 5월은 가정의 달이면서 어린이주일, 어버이주일이 낀 달이다. 요사이는 어린이를 향하여 폭력이 난무하고 미혼모에 대한 소외, 미성년자에 대한 취업, 약물복용및 중독등이 많이 있어서 어린아이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데 어른은 아이들에게 1.실망시키지 말자. 자녀와 약속한 것이 있는가? 약속을 지키는 부모가 되자. 자녀 가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고 있는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 를 아는가? 부모의 칭찬과 격려를 기다리고 있다. 요사이 어른 들은 자녀들을 이용해서 자신의 유익을 구하고 물질을 버는 데 이용한다. 기쁨과 용기를 줄지언정 실망을 주지 말자. 2.관심을 주자. 사형이 확정된 죄수가 마지막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죄를 짓지 않았던 어릴적에 자기에게 관심을 주었더라면이다. 부모의 사랑이 자녀를 훌륭히 만들어 간다. 기도로 찬송으로 말씀으로 관심을 가지면 자녀는 그대로 훌륭히 성 장한다.우리는 관심을 끊지않는 부모가 되자. 3.가르칠 것을 바로 가르치자.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했다. 착한 아이와 나쁜 아이 가 따로 있지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가르치면 하나님이 기 뻐하시는 자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세상의 아이가 된다.우리 는 자녀들에게 말씀을 기도를 성령의 삶을 축복된 삶을 사랑 을 믿음을 바로 가르쳐야 한다. 그리하면 늙어서도 그것을 떠 나지 않게 된다. 우리는 가르칠 것을 바로 가르치자. 4.소망을 주자. 누구에게나 미래가 있다.소망이 있다. 이를 얼마나 개발시키느 냐에 따라서 성공과 실패가 달려있다. 때로 자라다보면 실수도 실패도 부족도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잘하도 록 이끌어주고 소망을 주는 일이다.부모는 최고의 교사이다. 그렇다고 어른의 축소판은 아니다.우리는 소망을 주자. ▶ 215.꿈이 있는 자는 잠29:18 앞을 내다볼 줄 아는 자는 성공하게 된다. 그리고 방자히 행치 않고 율법을 지키면서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율법이 요구하시는삶을 살아가게 된다. 고로 꿈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살게 된다. 우리도 꿈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데 꿈이 있는 자는 1.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산다. 야곱이 밧단 아람으로 가다가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의 음 성을 들었다. 그리할 때에 그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살았다.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땅의 것을 바라보지 않고 하늘의 것을 바라다 보았다. 땅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늘에 소망을 두 고 살았다. 꿈이 있는 자는 목적이 분명한 삶을 산다. 2.최선을 다하며 산다. 꿈이 있는 자는 자기가 할 일을 알아서 하며 맡은 일에 최선 을 다한다.인간으로 가치있게 산다. 창조주 하나님의 뜻에 맞 추어 산다. 고로 도중에 하차하지 않는다.꿈을 이루기 위해 매 사에 정력을 다해 헌신하고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며 마음과 정성과 생명과 뜻을 다하면서 최선을 다한다. 3.낙심하지 않고 산다. 좋은 일을 하다가 보면 수많은 어려움도 당한다. 일을 하는데 에 방해군도 만난다.환란도 핍박도 당한다. 그러나 이러한 일 에 낙심하지 않는다.포기하지 않는다. 이는 꿈이 있기 때문이 다. 먼 미래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하기 때문이다. 어려운 일 뒤에 있을 큰 축복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고로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도 낙심하지 않는다. 4.기도하면서 산다. 꿈을 가진 자는 불타는 소원이 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자 기에게 주신 은사를 발휘하고 개발하고 활용한다. 성공과 개혁 을 위하여 최선을 다한다. 이를 위하여 기도의 아름다운 삶을 산다. 자기가 하나님의 계획속으로 들어간다. 그리하여 하나님 의 뜻을 이루는 성도가 된다. 우리도 기도하면서 살자. ▶ 216.현숙한 성도는 잠31:10-31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를 현숙한 여인의 지혜로운 삶에서 깨닫게 한다.이는 음녀의 삶과 대조를 이룬다. 현숙한 여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을 바탕으로 지혜를 실천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로인하여 칭찬을 받게 되는데 현숙한 성도는 1.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이다. 믿음이 좋은 자가 칭찬을 받게 된다. 세상에서 아무리 좋은 일 을 행한다고 하여도 모든 것이 사라질 때에는 없어지나 믿음 만이 하나님앞에서 칭찬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믿음좋은 백부 장이 칭찬을 받고 고넬료가 칭찬을 받고 집사의 직분을 잘 감당한 자가 칭찬을 받는다고 하였다. 고로 현숙한 성도는 여 호와를 잘 경외하여 하나님앞에서 칭찬받는 자이다. 2.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자이다. 가정의 식구들이 조금은 부족하다고 하여도 여자가 잘 들어 오면 그 집이 복을 받게 된다. 그러나 여자가 잘못 들어오면 모든 것이 망하게 된다. 현숙한 여인은 남편에게 평안함을 주 는 자이다. 자녀에게 미래를 주고 모든 식구들로 하나가 되게 하고 집안일을 잘 보살피는 자이다.그리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효도하게 하며 감사가 넘치는 가정을 이루는 자이다. 3.계획성있게 일을 하는 자이다. 현숙한 여인은 남편이 그를 믿도록 일을 한다. 밤이 새기 전에 일어나서 그 집 사람들에게 식물을 나눠주고 종들에게 일을 정하여 맡기고 힘으로 허리를 묶고 그 팔을 강하게 하고 아 침부터 밤까지 일을 하며 겨울이나 어떠한 난관을 위해서도 미래를 준비하여 후일을 웃는 자이다. 4.이웃에게 선을 행하는 자이다. 현숙한 여인은 간곤한 자에게 손을 펴며 궁핍한 자를 위하여 손을 내민다.곧 자기만을 위하여 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위 하여 봉사하는 사람이다. 그리하여 손의 열매가 그에게로 돌아 가고 그 행한 일을 인하여 성문에서 칭찬을 받게 된다. .......<<전도서>>.............. ▶ 217.세상속에서 성도의 삶 전9:7-12 인생들의 결국이 일반이다.해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것이 일반이다.그렇다면 이왕이면 삶의 어두운 면보다 밝은 면을 선택해서 살고 하나님을 소망하면서 살고 기쁘고 부지런히 최선을 다해서 사는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만족스럽게 여겨야 한다. 1.즐거운 마음으로 살자. 우리의 하는 일을 하나님께서 벌써 기쁘게 받으셨다고 하신 다. 그렇다면 식물을 먹을 때에도 기쁨으로 먹고 즐거운 마음 으로 포도주를 마셔야 한다. 의복을 희게해서 예수님의 재림시 에 영광받을 준비를 하고 머리에 향기름이 그치지 않아야 한 다. 그리고 평생에 모든 날,해아래에서 하나님이 주신 모든 날 을 아내와 즐겁게 살라고 했다. 2.최선을 다해서 살자. 네 손에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에는 일도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 이라고 한다.왜 일에 보람이 없고 기쁨이 없는가? 최선을 다 하지 않고 마음과 정성을 다하지 않고 자기의 것을 팔지 않 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할 때에 건강도 보람도 기쁨도 있다. 3.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면서 살자. 인생의 성공여부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왜냐하면 빠른 경주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유력자라고 전쟁에서 승리하 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라고 식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명철자 라고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기능자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고 이는 시기와 우연이 모든 자에게 임하기 때문이다.고 로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고 자족하면서 살자. 4.항상 준비하면서 살자. 물고기가 재앙의 그물에 걸리는 날, 새가 올무에 걸리는 날을 알지 못하고, 인생이 재앙의 날이 홀연히 임하는 날을 알지 못 한다. 고로 결산의 날을 생각하면서 일하고 항상 희망을 잃지 말고 고달프고 어려워도 성실하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자. ▶ 218청년이 해야 할 일 전11:9-10 청년이여 어린 때를 즐거워 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대로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고 했다. 그리하여 근심으로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으로 물러가게 하라 했다. 1.신앙생활을 잘 해야 한다. 우리가 눈으로 입으로 귀로 생활로 하고 싶은대로 하면 마지 막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신다고 한다. 고로 우리의 마 음이 어떠한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마음으로 말씀을 가득차 게 해서 신앙생활에 부족함이 없는 자가 되어야 한다.우리는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으로 주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신앙생활 을 바로 하자. 2.도덕생활을 잘 해야 한다. 우리는 도덕의 부재속에 살고 있다. 도덕은 먼저는 하나님을 잘 섬기라고 하신 십계명속에서 찾을 수가 있다. 이는 위로는 하나님을 잘 섬기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섬기라고 했다.고로 이러한 말씀을 기준으로 살아야 한다.그리고 무엇이 옳고 그 른지를 판단하면서 살아야 한다. 3.교회생활을 잘 해야 한다. 우리의 환경은 너무나 유혹을 받기에 알맞는 환경이다. 그래서 청년들이 살아가는데 건전하게 성장하기가 어렵게 만들고 있 다.무슨 수단과 방법을 쓰더라도 성공하려는 성공제일주의,쾌 락주의가 청년들을 혼미하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좋은 친구를 사귀고 성경을 통하여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도록 교회생활을 잘 해야 한다. 4.가정생활을 잘 해야 한다. 청소년들의 심성이 자라고 성장하고 변화를 받는 곳이 가정 이다.그래서 가정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사랑이다. 그런데 우 리의 가정은 이러한 환경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부모와 함께 얼굴을 마주보며 대화하고 교감을 나누어야 한다. ▶ 219참다운 행복 전12:1-14 돈있고 지위있고 건강있고 지식이 많으면 행복한가? 그런데 이러한 모든 조건을 갖춘자들이 법정에 서고 재판을 받고 있다.아무도 저들이 행복하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물먹고 물마시고 팔을 베고 누었다고 하여도 낙이 그 가운데에 있는데 1.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때 우리에게 주어진 일이 때로는 고달프고 힘들고 어려울 수가 있다. 그러나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갈 때에 행복이 온다. 할 일이 없어서 놀고 있는 자 를 보는가? 일하기 싫어서 피해 다니는 자를 보는가? 이 얼 마나 괴로운가? 그러나 무엇인가 하나님의 일을 맡아서 충성 을 다할 때에 얼마나 행복한가? 우리도 그런 자가 되자. 2.하나님과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를 사랑할 때 주님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 라고 했다.상대야 어떠하든지 짝사랑하는 자가 제일 행복하 다. 그런데 우리는 먼저 하나님을 사랑했는가? 그리고 하나님 이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고 있는가? 남을 사랑할 때 삶에 보 람이 있다. 행복이 있다.주님께 인정받고 예비된 상을 받는다. 3.나누고 베풀고 희생할 때 소유했다고 배웠다고 경험했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가장 작 은 것이라도 나누고 베풀고 희생할 때 행복이 온다. 우리가 주 님으로부터 받고 얻고 아는 것이 있는가? 주님이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나누자.베풀자. 희생하자.그리하면 주님께서 우 리를 향하여 십자가를 지신 뜻을 발견할 것이다. 4.여호와를 경외할 때 해와 달과 별들이 어두어지기 전에 할 일,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기 전에 할 일, 힘이 없어지기 전에 할 일,생명이 하나님께 로 가기 전에 할 일은 세상의 모든 것은 헛되니, 끝이 없으니, 피곤케 하니 사람의 본분을 알고 행하라는 것이다.그것이 여 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니 우리도 행복한 일을 하라는 것이다. .......<<아가서>>.............. ▶ 220.일어나자 아2:10-13 솔로몬이 불타는 사랑을 가지고 순수하게 술람미 여인에게 보내는 사랑 노래인 아가서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말씀하고 있다. 그러면서 때가 되니 일어나서 함께 가자고 한다. 그렇다면 주님은 누구에게 일어나라고 하시는가? 1.사명자에게 일어나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고 하신다. 그런데 요나는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 시스로 갈려고 하다가 바다에 풍랑을 일으키신 하나님안에서 고생을 한다.두번째 일어나서 가서 하나님께서 명한 바를 선 포하라고 하신다. 2.병든 자에게 일어나라고 하신다. 주님은 베데스다 못가에 있는 38년된 병자에게 일어나 네 자 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신다. 이와같이 주님은 심령이 병든자 육신이 병든자, 삶이 어그러진자,좌절과 낙담속에 우는 자들에 게 일어나서 건강한 사람이 되라고 하신다. 그리하여 축복의 사람,소망의 사람이 되라고 하신다. 3.죽은 자에게 일어나라고 하신다. 주님은 죽어서 장사를 지내려고 하는 청년에게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고 하신다. 그리고 야이로의 딸에게 달 리다굼 하시며 딸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고 하신다. 이시간도 하늘처럼 믿었던 자가 죽은 자가 있는가? 주님의 음성은 그러한 자들에게 명하신다. 우리는 일어나 주의 음성을 듣자. 그리하여 죽었던 자리에서 일어나자. 4.잠자는 자에게 일어나라고 하신다.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수난의 십자가를 앞에 놓고 기도 하셨다.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다. 그러나 예수님 의 제자들은 슬픔을 인하여 잠을 자고 있다. 그리하여 어찌하 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고 하신다. 우리 도 주의 음성을 듣고 일어나 기도하는 자가 되자. .......<<이사야>>.............. ▶ 221.내게로 오라 사1:18-20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는 분이시며 우리를 도우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그 분께서 우리 인간을 향하여 오라고 부르신다. 그리고 우리의 죄와 무거운 짐과 목마름과 사명에 대해서 변론하자고 하신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자. 1.죄인을 부르신다(사1:18)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며 변론하자고 하신다. 그리고 너희가 죄인이 아니냐? 원죄와 자범죄가 있지 않느냐? 죄의 값은 사망 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나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너희 죄가 주홍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고 하신다. 이에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 을 먹을 것이요 거절하면 칼에 삼키우리라고 하신다. 2.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를 부르신다(마11:28) 우리에게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것이 있어서 항상 고통과 어 려움이 따른다.이러한 죄의 짐,질병의 짐,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 한 모든 짐을 가지고 오라고 부르신다.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며,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고, 모든 것을 기 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구하여 쉼을 누리라고 하신다. 3.목마른 자를 부르신다(요7;37) 주님은 수가성 우물가에서 남편을 다섯번이나 바꾼 여인에게 세상이 주는 물은 마르거니와 내가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한다. 그속에서 영생하도록하는 샘물이 되리라. 나를 믿는 자 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고 하신다. 세상에는 갈증만 있으니 예수께 나와 생수를 마시자. 4.사명자를 부르신다(사6:8) 하나님은 오늘도 이모양 저모양의 어려운 상황속에서 진실로 하나님의 일을 할 자를 부르신다. 그러면서 누가 나를 위하여 갈꼬하면서 진정한 사명자를 부르신다.추수할 일군을 부르신다. 땅끝까지 이르러 주의 증인된 사명을 감당할 자를 부르신다.우 리가 그 일에 동참하자. ▶ 222.환란날에 해야 할 일 사6:1-13 여호와는 나의 능력이라는 뜻을 가진 웃시야왕이 유대 나라의 영토를 확장시키고 국력을 강화시켰다. 그러다가 교만하여 제사장 직분을 침해하다가 문둥병에 걸려 죽게 되었다. 이러한 국가적인 환란을 당할 때에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1.하나님을 찾는 일이다. 환란날에 나를 부르라.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고 하신다.웃시야왕이 죽는 어려운 상황하에서 이사야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앗수르가 이스라엘을 쳐들어 올때에 히스기 야왕도 베옷을 입고 성전에서 적군의 편지를 펴놓고 주여 보시 옵소서라고 눈물로 기도한다. 그때 하나님의 돌보심과 구원하심 을 받게 되었다. 우리도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하나님을 찾자. 2.성전을 지키는 일이다. 웃시야왕이 죽어서 국가적인 환란이 올때에 많은 이들은 하나 님과 교회와 말씀을 멀리한다. 그러나 이사야는 하나님의 전을 찾게 되었다. 그리하다보니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었다. 다윗이 법궤를 옮기다보니 성전건축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우리도 어려운 일이 생길 때에 하나님의 전을 지키는 자가 되자. 3.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는 일이다. 환란시에 성전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다가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음성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 부터 사명을 받았다. 하 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었다.환란날에 성도는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양무리를 기억해야 한다. 누가 나를 위하여 갈꼬라고 할 때에 나를 보내소서라고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되자. 4.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일이다.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지 못해서 생기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또한 맡겨주신 직분을 감당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고로 환란날에 남을 보고 지적하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일을 나태하게 하는 것보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직분 을 잘 감당하는 성도가 되자. ▶ 223.이사야가 발견한 것 사6:1-8 웃시야왕이 죽던 해에 즉 국가가 어려움을 당할 때에 이사야가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를 한다. 이때에 위대한 발견을 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오묘하신 뜻과 자기가 해야할 사명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남은 생을 살게 되었는데 1.기도중에 하나님을 발견하였다. 이사야는 성전에서 기도하다가 거룩하신 하나님을 발견하였다. 그가 본 하나님은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고 스랍은 모셔셨는 데 서로 창화하고 있고 그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 하고 집에 연기가 충만한 것을 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본 이사야의 모든 삶이 바꾸어지게 되었다. 2.자신을 발견하였다. 하나님의 영광된 모습을 통하여 이사야는 죄악된 자기 자신을 발견하였다. 대개의 사람들은 남의 허물은 잘 보면서 자기의 허 물은 보지 못하고 있는데 이사야는 먼저 자신을 바라보고 회개 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의 모든 죄가 사함을 받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3.사죄의 원리를 발견하였다. 스랍이 숯불을 가지고 와서 이사야의 입술에 댄다. 그러므로 인 하여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해졌다고 한다. 곧 성령의 뜨거운 불의 역사로 죄를 깨닫고 이를 회개할 때 모든 죄가 사 함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은 망하게 되었고 주안에 있는 자로 다시 살게 되었다. 4.자신이 해야할 사명을 발견하였다. 자신이 변한 이사야의 귀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다. 내가 누구 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아무도 없는 성전에서 갈 사람을 구하는 하나님의 음성에 이사야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한다.하나님은 오늘도 국가적인 어려운 일 을 당하게 하고 기도하게 하신다.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사 명감당할 자를 찾고 계신다. 우리가 이 일을 감당하는 자 되자. ▶ 224.위대한 발견 사6:1-8 문제가 생길때 축복이 기적이 능력이 비밀이 발견되고 하나님을 발견하는 기회가 된다.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하고, 참된 진리를 발견하지 못하고는 참된 사명을 발견하지 못한다. 문제가 있는가? 위대한 발견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이사야는 1.하나님을 발견하였다. 웃시야 왕이 죽었다.국가가 혼란해졌다. 그때에 성전에서 국가 를 위하여 기도하다가 하나님을 발견하였다.살아계신 하나님, 자신을 깨트리시는 하나님,엄위하신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 영광 가운데에 나타나신 하나님, 사명을 주시는 하나님을 발견 하였다. 그리고 겸손한 마음으로,두려운 마음으로, 경외하는 마 음으로,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앞에 조아린다. 2.자기 자신을 발견하였다. 이사야는 하나님을 보고나서 자기만이 의인이요 애국자요 거 룩한 자인줄을 알았으나 추한 죄인이요 입술이 부정한 자임 을 깨달았다. 베드로는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 다라고 했다. 바울은 죄인중에 내가 괴수라고 하였다. 주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닌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신다. 3.자기의 사명을 발견하였다. 성전에 아무도 없는데 누가 나를 위하여 갈꼬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다. 이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깨달은 이사야, 주 여 내가 여기있나이다.나를 보내소서라고 한다. 성도에게는 기 도의 사명,직분,전도,어부,군인, 경주자,파숫군,농부,일군, 그릇의 사명이 있다.이를 발견하자. 4.우리는 문제시 성도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같이 소동하고 더 큰 문제를 일으키기 전에 기도하는 일이다.하나님을 체험하는 일 이다. 자원해서 낮아지고 겸손해지고 충성하고 순종하고 헌신 하는 일이다.다른이가 아닌 내가 십자가를 지고 해야할 일을 찾아나서는 일이다. ▶ 225.고통을 주신 이유 사38:1-20 인생살이에서 축복은 축복의 옷을 입고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고난과 고통의 옷을 입고 찾아온다.이때에 많은 이들은 앞날의 축복을 바라보지 못하고 쉽게 좌절하고 포기하고 고통에 안주하고 만다.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고통을 주신 이유는 무엇인가? 1.기도와 눈물을 보기 위해서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고 하실 때 에 왕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한다.그때에 하 나님은 선지자를 보내어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 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소리를 듣고 싶어 하신다. 우리의 눈물을 보고 싶어하신다. 고통이 있는가? 기도하자. 2.잘못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히스기야는 왕이 된 후로 처음에는 하나님앞에서 진실한 마 음과 전심으로 경배와 감사를 드리고 우상을 타파했으며 선 하게 행동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나라가 평안 하고 살만하니까 예배와 기도생활을 소홀히 하고 자기를 높 이는 생활을 하였다. 그러기에 평생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고 앗수르 군대를 보내고 죽을 병을 주시어 깨닫게 하신다. 3.평안의 복을 주시기 위해서 큰 고통을 주신 것은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으면 고통이 온다. 고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 고 기도와 순종생활을 하도록 고통을 주신다. 그리하여 큰 고 통중에서도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눈물로 간구하게 하신 다음에 평강으로 복을 내리신다. 4.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게 하기 위해서 음부가 주께 사례하지 못하며 사망이 주를 찬양하지 못하며 구덩이에 들어간 자가 주의 신실을 바라지 못한다고 했다. 오 직 산 자라야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하고 주의 복음을 전파 한다.고로 우리에게 육신의 때를 연장시켜 주심은 하나님을 생각하고 감사하면서 주의 은혜안에서 살게하려 하심이다. ▶ 226.삶의 위기시에 사38:1-20 인생이 살아가면서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신앙적으로 큰 위기에 봉착할 때가 있다.히스기야왕도 죽음이라는 심각한 위기에서 이를 새로운 삶의 기회로 삼고 삶의 전환점으로 삼았다. 우리도 이러한 때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 1.기도하는 기회로 삼았다. 모든 명예와 권세와 부를 누리면서 국가를 잘 이끌어 오던 히스기야왕이다. 그런데 죽음이라는 엄청난 위기에 직면하고 나니 이를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말았다. 이때에 히스 기야왕은 하나님의 전에 나아가 기도하는 기회로 삼았다.그리 하여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하나님께 심히 통곡하는 기도를 드리게 되었다. 우리도 문제시에 기도하자. 2.주의 능력을 체험하는 기회로 삼았다. 이사야도 국가가 어려움을 당할 때에 기도하다가 스랍들 사 이에 계신 하나님을 발견했고 자신을 발견했으며 귀한 사명 까지 얻었는데 히스기야왕도 위기시에 하나님의 위대한 기적 을 체험하는 기회로 삼았다.그리하여 자신의 병도 국가의 어 려움 문제도 해결받는 기회로 삼았다. 우리도 그리하자. 3.모든 문제를 해결받는 기회로 삼았다. 히스기야왕은 자신의 병문제 뿐만 아니라 호시탐탐 노리는 앗수르의 침범문제도 곁들여 있었다. 그러기에 더욱더 난감한 상태였다. 그리하여 문제시 기도함으로 자신의 문제뿐만 아니 라 국가의 문제까지도 해결받게 되었다. 모든 문제는 한꺼번에 온다. 우리도 이러한 때에 모든 문제까지 해결받자. 4.결단하는 기회로 삼았다. 그가 병으로부터 고침을 받고 한 것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찬송이었다. 죽은 자는 찬양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살았을 때에 하나님을 기뻐하면서 찬양하는 삶을 살기로 했다.받은바 은혜를 통하여 새로운 신앙의 결단을 가지고 다시한번 재기 의 기회로 삼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우리도 그리하자. ▶ 227.위로자의 자격 사40:1-2 사람이 상처를 입고 위로를 받지 않으면 강퍅해진다.사나와진다.슬퍼진다.외로워진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너희는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말씀했다.왜냐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고 행복한 것같지만 내면으로 들어가보면 지치고 시달리고 고통당하기 때문이다. 1.사랑이 풍성해야 한다. 사랑이 없는 자는 다른 사람의 마음과 슬픔과 근심을 이해할 수도 도와줄 수도 없다.인간은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난 자처럼 살아가고 있다. 고로 이런 자들을 위로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세상에서 최고의 위로자는 주님이시다. 그 분은 때리고 침뱉고 욕하고 십자가에 못박는 원수들을 향하여 사 죄의 은총을 비는 기도를 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2.통찰력과 지혜가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12살때 부모를 따라서 유월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가셨다.그때에 선생들과 성경에 대한 말씀을 듣기도 묻기도 하셨는데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기었다. 그 리고 수많은 시험과 올무에서 지혜롭게 대답을 하셨다. 우리도 이런 주님의 지혜를 갖는 자가 되자. 3.능력이 있어야 한다. 능력없이 무조건 사랑만해도 아니된다. 모든 고통을 해결할만 한 능력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병을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 리시고 바다와 파도까지 잔잔하게 하는 권능을 입으셨다. 고로 우리도 주님을 통한 능력을 가지어 도움이 필요한 자에게 위 로를 주는 자가 되자. 4.체험이 있어야 한다. 신앙생활에서 당하는 수많은 체험 고난 고통을 당한 자라야 진정한 위로자가 된다.그 체험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가 지고 기도할 때에 위로가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위로 할 때에 위로가 된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전할 때에 위로가 된다. 소망이 없는 것은 절망 죽음 지옥이기 때문이다. ▶ 228.여호와를 앙망하는 신앙 사40:27-31 성도는 새로운 용기를 가지고 나아가는 신앙의 향상과 전진이있어야 한다.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여호와를 앙망하는 신앙으로 새 힘을 얻어 독수리처럼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전진이 있어야한다. 그렇다면 여호와를 앙망하는 신앙은 1.인내하는 신앙이다. 여호와를 앙망한다는 것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인내의 신앙으 로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뜻이다. 인내없는 신앙은 무가치하다. 고로 히10:36에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 약속한 것을 받기 위함이라고 했다. 인내하는 자 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말씀을 지키고 근심과 불안을 이기 고 사업가가 성공을 하고 성도는 약속의 복을 받는다. 2.순종이다. 순종하는 믿음의 소유자가 능력을 받을 수가 있다. 그래서 예 수님도 순종하셨는데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 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 에게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고 한다. 순종이란 말은 어디서부 터... 받는다는 뜻으로 순종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는다 3.겸손이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능력과 기쁨을 주신다. 왜 인내하지 못하고 순종하지 못하는가? 교만하기 때문이다.왜 불평하고 반항하는가? 교만하기 때문이다.십자가의 주님을 잊었기 때문 이다. 고로 우리는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삶을 가지고 주 의 십자가 아래에서 내 자신을 굴복시키는 삶을 가져야 한다. 4.기도이다. 기도는 희생이다.하나님과의 대화이다. 하나님앞에서 죽고 사 는 것이다.이는 향을 말하는데 하나님앞에서 주의 십자가를 붙드는 것이다. 고로 신령한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다. 또 먼 나 라를 바라보는 망원경이다. 그래서 하나님과 기도를 통하여 여 호와를 앙망하는 신앙을 소유해야 한다. ▶ 229.신령한 날개 사40:31 독수리날개치며 올라가는 생활은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가 얻는 새 힘의 생활이다.성도는 실망을 이기는 새 힘과 소망이 필요하다.그래야 불평하지 않고 감사한다. 새 힘의 생활은 걸어가고 달음질하며 올라가는 생활인데 이런 힘을 주는 신령한 날개는 1.믿음의 날개이다.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리라(시103:5)고 말씀했 다.새 힘을 내는 원동력은 믿음이다. 그리고 회개이다.창조주 하나님을 바로 믿는 믿음이 있을 때 새 힘이 솟는다. 그리고 죄인이 회개할 때 솟는다. 우리는 창조주의 모습에까지 올라가 는 믿음과 회개의 날개를 가지자. 2.용기의 날개이다. 독수리는 비굴하지 않는다.째째하지 않는다. 시험과 환란을 두 려워하지 않는다. 성도들도 영적날개를 가지고 이세상을 뛰어 넘는, 태양을 향해 창공을 가르는, 어떤 시험이나 환란에도 굴 하지 않고 쇠하지 않는 용기와 능력으로 살아야 한다.또 독수 리같이 신앙의 용기를 가진 날개를 가져야 한다. 3.사랑의 날개이다. 신32:11에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위에 그것 을 업는 것같이 하신다고 하였다. 이는 새끼를 사랑하는 만큼 새끼를 연단시키는데 하나님께서도 성도들을 사랑하는 만큼 연단을 시키며 사랑의 날개로 업으시기도 받으시기도 하신다. 우리도 이런 사랑의 날개로 날아가는 자가 되자. 4.기도의 날개이다. 욥39:28이후에 독수리는 낭떨어지에 집을 지으며 뾰족한 바 위 끝이나 험준한데 거하며 거기서 움킬만한 것을 살피고 멀 리본다고 했다. 멀리보는 눈은 신령한 눈이다.밝은 눈이다. 하나 님의 세계를 보는 눈이다.이는 기도하는 눈이요 고난속에 찬 송하는 눈이요 이런데 기쁨을 가지는 눈이다. 우리도 기도의 날개를 펴서 하늘 멀리 바라보자. ▶ 230.약속이 있는 성도 사41:8-16 하나님께서만이 약속을 하실 수가 있다. 왜냐하면 그는 능력이 있으시고 권능을 가지시고 모든 것을 지으셨기 때문이다. 그분만이 우주의 섭리자요 지배자이시기 때문이다.그분이 우리에게 약속하실 때에 약속을 한 우리는 승리자가 된다. 무슨 약속인가? 1.관계불변의 약속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종이라. 택한 자라.벗이라 부르신다. 그리고 땅끝에서부터 붙들고 땅 모퉁이에서부터 부르고 말씀하시기 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버리지 아니하였 다고 한다. 그리고 두려워 말라.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 지 말라.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고 하셨다. 이와같이 하나 님과 인간과의 관계는 불변함을 보여주신 약속이다. 2.도움의 약속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이렇듯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 로 정립되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고 의로운 오른손으로 붙드신다고 하신다.이를 한번도 아니고 여러번 강조하셨다.하 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는 한 우리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나약하지 않다. 이와같이 도우심을 보여주신 약속이다. 3.쓰심의 약속이다. 우리는 지렁이와 같은 존재이다. 대적이 올때에 대항도 못하던 존재들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로 삼는다고 하신다. 그리고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고 작은 산들로 겨같게 하신다고 하신다. 원수를 까부른즉 바 람에 날리게 하신다. 이와같이 쓰심을 보여주신 약속이다. 4.승리의 약속이다. 저렁이 같은 야곱이 하나님께서 쓰시니 날카로운 타작 기계 가 되고 싸우는 것마다 승리를 가져온다.믿는 자에게 주님이 함께 하는 표적이 나타나고 땅끝까지 이르러 주의 증인된 사 명을 감당케 하고 기도할때 순종할때 외칠때에 주의 능력이 함께 하도록 하신다. 이와같이 승리를 보여주신 약속이다. ▶ 231.문제를 기회로 사41:10-16 문제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어떻게 대하느냐? 어떠한 마음을 가지느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왜냐 문제는 바로 위대한 기회를 만들고 이를 통해 하나님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1.문제를 변화의 기회로 문제없는 자는 없다. 그러나 이 문제를 변화의 기회로 바꾸는 자는 위대하다. 새로운 문제는 새로운 돌파구를 향해 전진하 라는 것이다.새로운 시도. 새로운 사명을 가지고 나가라는 것 이다. 문제속에 열쇠가 있다.문제속에 새로운 변화가 있고 삭 개오 바디매오의 변화가 있었다.문제시 두려워 말라. 당황치 말라.악이 선이 되게 하라. 내 자신이 변화되는 기회로 삼으라. 2.문제를 정상의 기회로 문제를 통해 정상으로 갈 수 있다. 정상은 비어있다.누구나 차 지할 수가 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거나 발명하면 된다. 큰 문 제를 해결하면 그것이 정상이 될 수 있다. 정상에 설려면 열심 이 있어야,좋은 점을 바라야, 최선을 다해야,무엇이든지 배워 야, 할 수 있다는 믿음과 시도를 해야 한다. 3.문제를 진리로 붙잡는 기회로 문제시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을 안다. 내가 신임하던 자,믿던 자가 변한 모습을 본다. 그러나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수많은 이단과 악령이 역사했어도 진리는 변하지 않았다. 이러 한 때에 이것이 진실인가? 공평한가? 유익한가? 따져보자.그 리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찾아보자. 4.문제를 축복의 기회로 문제가 있는 것은 바로 옆에 축복이 있다는 것이다.기쁨이 있 다는 것이다. 승리 성공 능력 만남이 있다는 것이다. 아브라함 의 문제는 부활과 큰 축복이 있었다. 베드로의 문제는 앉은뱅 이를 일으켰다. 야이로의 문제는 죽은 가운데서 살리는 축복이 있었다. 우리는 두려워 말자.능력의 하나님이 도와주신다. ▶ 232.하나님이 함께하는 자 사41:10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한다고 하신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도와주시고 의로운 오른손으로 붙드신다고 하신다. 그렇다면 성도는 그리스도와 연합해서 살고 사명감당하면서 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하는데 1.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와 함께 한다. 하나님은 인간된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맡기는 자에 게 함께한다.인간의 지혜, 지식,경험,물질,삶,생명등과 같은 모 든 것까지 맡기고 하나님만 나타내는 자에게, 하나님만 높이는 자에게,하나님의 뜻안에서 자신을 포기하는 자에게,자신의 부 족함을 알고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함께 한다. 2.죄를 회개하는 자와 함께 한다. 하나님은 죄를 짓는 자에게는 함께하지 않는다. 그러나 무슨 죄를 졌든지 이를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에게 함께 한다.하나 님은 죄를 회개하는 삼손에게 힘을 주시었다.베드로에게 수제 자의 영광을 주셨고 죄많은 여인에게 사죄의 은총을 허락하 셨다.그러나 교만하거나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자는 이들을 버리셨다. 징계하셨다.죄가운데 거하게 하셨다 3.말씀에 순종하는 자와 함께 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때에 이를 기뻐하셨다.그리고 놀랍게 축복하셨다. 그의 모든 것을 책임져 주셨다.하늘의 문이 여는 축복을 주셨고 들어가도 나가도 복 을 주셨다. 만선의 축복을 얻게 하셨고 크고 놀라운 비밀을 깨 닫게 하셨다. 곧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와 함께 하신다. 4.기도하는 자와 함께 한다. 하나님은 어떠한 상황 상태에서라도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에 게 함께 한다. 전쟁시,풍랑시, 고통시,질병시에라도 부르짖는 자 에게, 입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 낙 망하지 않는 자에게, 미래를 가지는 자에게 함께 하신다. 그리 고 큰 응답으로 보상하신다. ▶ 233.두려움을 이기는 길 사41:10 인간은 자신의 능력에 한계를 느낄 때나 대적을 보거나 사람을 보거나 환경을 보거나 자기의 위치를 보거나 주의 날이 임함을 보고 두려워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니 두려워 말라고 하시며 우리를 도와주시고 의로운 오른팔로 붙드신다. 1.두려움의 원인 인간은 생명에 위협을 느끼거나 죄를 지을 때나 어떤 어려움 이나 위험을 당하면 두려움을 느낀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동산나무 사이에 숨었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그 리고 두려워해서 숨었다고 한다. 또 자기보다 큰 대적이나 힘 이나 능력아래 거할 때에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2.두려움이 주는 손해 두려움은 마음을 상하게 한다. 공포를 느껴서 신경과 근육이 정상으로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마귀로 즐거움을 누리게 한 다. 고로 성도는 하나님의 힘으로 두려움을 물리쳐야 한다. 딤 후1장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이에 우리는 항상 주의 평안으로 가득차자. 3.두려워하지 말아야할 이유 하나님께서 방패가 되시고 상급이 되시기에, 하나님께서 우리 와 함께 계시기에, 하나님께서 이모양 저모양으로 지켜주시고 인도하시기에, 하나님께서 능력의 오른손으로 붙드시고 우리를 대신해서 보수하시고 보복하시기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라도 우리를 지켜주시고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기 때문이다. 4.두려움을 이기는 길 미리 겁을 먹지말고 담대해야 한다. 죄를 짓지말고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한다. 하나님의 때가 임하기를 기다려야 한다. 하나님 을 피난처로 삼고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기도해야 한다.성 령으로 충만한 삶을 가져야 한다. 순교라도 각오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마음을 채우고 약속을 믿고 나가야 한다. ▶ 234.하나님의 은총 사43:1-2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이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수많은 어려움을 당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실 뿐만 아니라 기적으로 권능으로 축복으로 우리를 지켜주신다.이러한 하나님의 은총은? 1.기도하는 가운데 임한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수많은 문제의 역사이다. 홍해를 건너는 때 부터 가나안 땅에서의 삶까지 문제투성이였다.그러나 그때마 다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함 받았다. 곧 기도 할 때에 하나님이 함께 하셨고 하나님께서 지켜주셨고 대적 을 물리쳐 보호하여 주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총이다. 2.확신하는 가운데 임한다. 사람은 가장 작은 것이라도 만들 수가 없다. 하나님의 손길이 있어야 한다. 이를 안 이스라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다. 광 야를 건너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모든 것을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확신으로 나아갔다. 그리할 때에 하나님은 모든 문제를 놀라운 기적으로 놀라운 영광으로 바꾸셨다. 3.의지하고 맡기는 가운데 임한다. 이스라엘이 나아가는 길에는 불가능한 것도 많이 있었다. 홍해 나 요단강을 건너는 일에서부터 대적을 물리치는 일 등... 그 러나 하나님의 언약궤를 앞세우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 께만 맡기고 나아갔다. 그리할 때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앞길에 기적의 기적을 베풀어 주셨다.그리고 평강으로 성령충만으로 형통의 길로 인도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총이다. 4.동행하는 가운데 임한다. 광야 40년의 생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생이었다. 그리할 때에 하나님은 이러한 이스라엘을 붙드시고 계셨다. 그리고 두려워 말라고 하시었다. 하나님의 것인 이스라엘이 물가운데 지날 때 불가운데 지날 때 하나님께서 침몰치 않고 사르지 않는다고 하셨다.이러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총이다 ▶ 235.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 사43:7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만드실 때에 서로 교제하게 하기 위해서 만드셨다. 구원목적을 위해서 만드셨다.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생명역사에 참여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실려고 창조하셨다.이렇게 창조하신 목적이 무엇인가? 1.우주만물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알게하기 위해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시작과 끝이 되신다. 그래서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께로 돌아간다고 했다.무엇 이나 만드는 것은 만드는 자의 것이 된다.하나님은 자기속에 있는 아름다움과 지혜로움으로 자기 속에 있는 것을 보여지 게 만들었다.그리하여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그 근원을 알려주셨다 (롬11:36,고전15:28,골1:16) 2.신앙의 대상이 누구인가를 보여주시기 위해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의 주인이시다. 역사를 주관하시고 계시 는 분이시다. 모든 것을 아시고 못할 것이 없는 분이시며 영원 토록 불변하시고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분이시다.고로 우 리 인간들이 사모하고 경배해야 할 분이시다. 그리고 그분만을 위하여 살아야 할 자이다. 3.자신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은 나를 위하여,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하여 우리를 창조하셨다(사43:7). 그리하여 일을 착수하시고 운행하 시고 섭리하시고 결실하는데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신다. 그러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 지 않을 때에 충이 먹어 죽게도 하신다(행12:23) 4.선한 일과 찬송을 부르게 하기 위해 하나님은 인간을 그리스도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셨다 (엡2:10)고 하신다. 그리고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기 하려함이라고 하신다(사43:21). 고로 성도들은 하 나님의 천지창조와 우리 인간을 만드심에 대해서 감사와 찬 송을 드려야 한다. .......<<예레미야>>.............. ▶ 236.일하지 말아야 할 것 렘9:23-24 이세상에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그리고 있다고 해서 힘이 있는 것이 있지만 없고 보이지 않아도 힘이 있는 것이 있다. 그러면서 우리가 꼭 자랑해야 할 것도 있지만 자랑해서는 안될 것도 있다. 자랑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1.지혜를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지혜는 사람을 교만하게 한다. 상상도 못할 죄를 범하게 하고 남을 무시하기도 한다.그리고 교만하여 패망의 선봉이 되기도 한다.고로 자랑하되 하나님의 지혜를 자랑해야 한다.그것은 우주만물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기 때문이다.그리고 우리는 자랑보다 겸손해야 한다.지혜자라면 하나님을 자랑하자. 2.용맹을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용맹을 자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 하나님을 믿지 않고 인간의 힘만을 믿는 자이다. 이런 자에게 하나님은 진노하시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지 못한다.그래서 우리 는 자기의 힘을 자랑하지 말고 주신 모든 것으로 주를 위해 충성해야 한다. 그리고 주님만을 자랑해야 한다. 3.부함을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걱정이 없이 살아간다고 하여, 먹을 것이 풍부하고 입을 것이 많고 마실 물이 끊이지 않는다고 하여 자랑하지 말아야 할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한 번 외면하시면 모든 세상의 부귀외 영화는 순식간에 사라지 기 때문이다. 고로 비참한 끝을 보기 전에 썩어질 육체나 부함 을 자랑하지 말고 영적인 부함을 자랑해야 한다. 4.자랑해야 할 것은 진정 지혜로운 자는 명철과 하나님을 아는 것과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줄 깨닫는 것이고 이 일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하신다.고로 이러한 하나님을 자랑해야 한다.우리는 약한 자를 들어 쓰시는, 충성하는 자를 칭찬하시며 더 많은 것을 풍성히 주시는 하나님을 자랑하자. .......<<에스겔>>.............. ▶ 237.파숫군은 겔33:1-9 어느 성에 성을 지키는 망루를 세우고 파숫군을 세웠다.그리고그의 손에 나팔을 쥐어 주었다.깊은 밤에는 경계하며 지키다가 만일 숲속에서 적이 나타나면 즉시 나팔을 불도록 했다. 이를 듣고 군인들은 전쟁을 준비하고 백성들은 피해야 한다. 1.깨어 경계를 잘해야 한다. 파숫군이 피곤하다고 졸면 큰 문제가 생긴다. 또한 나태해서도 안된다.이는 온 국민에게 큰 해를 주기 때문이다.영적인 일에 도 이와같다. 그것은 악한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기 때문이다.우리 성도들도 경계하고 깨어서 기도하는 파숫 군이 되어야 한다. 성도를 지키는 자가 되어야 한다. 2.긴급한 때에 나팔을 불어야 한다. 파숫군은 적군이 쳐들어 오는 것을 보면 즉시 나팔을 불어야 한다.이때에 나팔을 불지 않으면 성중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멸망당하고 만다. 하나님은 이시대 우리에게 나팔수로 파숫군 으로 삼아 주셨다.고로 이민족에게 복음의 나팔을 불어야 한 다. 그리하여 내가 살고 이민족이 사는 결과를 가져와야 한다. 3.분명한 나팔소리를 내야 한다. 만일 나팔이 분명치 못하면 누가 전쟁을 예비하리요라고 했 다.아침에 기상나팔을 불어야 함에도 취침나팔을 불면 아니된 다. 파숫군은 나팔소리가 정확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사람들 이 혼돈에 빠지게 된다.전쟁의 때, 평화의 때를 잘 알아서 나 팔을 바로 불어야 한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이단의 나팔소리 가 혼미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4.책임을 알아야 한다. 파숫군이 나팔을 바로 불지 못하면 성중에 있는 모든 사람들 이 멸망을 당하게 된다. 여기에 대한 책임은 파숫군에게 있다. 이로인하여 죽은 사람들의 핏값을 파숫군에게서 찾는다고 하 였다.이와같이 전도는 해도 좋고 안해도 좋은 것이 아니라 반 드시 해야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죽어가는 영혼을 구해야 한다 ▶ 238.성도는 겔37:1-14 구약시대에 활동한 선지자들을 보면 각각 특징이 있고 또 은사가 다르다. 이사야나 다니엘은 장래에 대한 예언으로, 예레미야는 감정적인 눈물로,아모스는 백성의 죄를 고발하는 정의로,호세아는 사랑으로, 에스겔은 환상으로 예언을 하였다.성도는 1.주의 물음에 대답해야 한다.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이는 불가능이 가능할 것 을 믿느냐는 질문이다. 에스겔 골짜기에 있는 마른 뼈들이 살 아날 수 있겠느냐이다.바벨론 포로에서,소망이 끊어진 그들이 다시 소생할 수 있느냐이다.우리나라 경제가 살고 정치가 살 고 국민들이 다시 살 수가 있느냐이다.이에 대답하자. 2.하나님의 능력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의 질문에 에스겔은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한다. 이 말씀은 자기가 아는 것으로 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 님이 하시는 대로 믿는다는 것이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 나 하나님으로서는 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하나님은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할 수 있다. 복음은 나를 보면 절망이 되나 하나님을 보면 소망이 넘치게 한다.이를 믿자. 3.주의 명에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은 마른 뼈들에게 대언하라고 하신다. 그리하여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고 명하라고 하신다. 생기야 이 민족의 가슴속에 들어가라. 생기야 불황을 당한 경제속에 들어가라. 생기야 저 북녁하늘 밑까지 들어가라. 생기야 온 교회의 성도에게 들어가라.이에 순종하자 4.결과에 감사해야 한다. 말씀에 순종하였더니 뼈와 뼈들이 맞춰지기 시작한다. 힘줄이 생기고 가죽이 덮이고 생기가 들어가서 살아 일어서는데 극 히 큰 군대를 이루었다. 소망이 없던 자가,다 멸절되었던 자가, 무덤속에 있던 자가,바벨론 포로로 끌려갔던 자가, 회생할 수 없다던 자가 다시 살고 회생하게 되었다.이에 감사하자. ▶ 239.소망이 없어졌을 때에 겔37:11-14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려움을 만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이러한 어려움에도 정도는 있지만 감당할 수 없는 고난과 역경 그리고 깊은 절망 가운데에 빠질 때도 있기도 하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어떻게 이를 극복해야 하는가? 1.주님께 소망을 두어야 한다. 누구나 인생살이에서 성공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환경이나 상 황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주님께 소망을 두고 살면 고난과 역경 그리고 깊은 절망속에서도 이를 극복할 수 있다. 소망이 있을 때에 노력도 생긴다. 그리고 희망찬 내일을 약속 할 수가 있다. 우리는 주님께 소망을 두자. 2.주님의 말씀을 믿어야 한다. 시37편에도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 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라고 했다. 위대한 믿음의 조상 들은 최악의 여건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다.하나님은 식언하지 않으시는 분이시다.모든 것이 참되고 확실하신 분이 시다.고로 그의 말씀을 믿어야 한다. 3.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한다. 성령은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며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도록 도우시는 분이시다.고로 절망을 극복하고 슬픔을 견디고 모든 일을 올바로 처리하도록 성령 의 충만함을 받아야 한다. 성령의 도움없이는 영적인 사람,하 나님의 사람,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없으니 성령의 충만을 받자 4.주님말씀으로 명해야 한다. 악한 마귀권세를 우리의 힘이나 능력이나 어떠한 것으로 한 다고 해도 이길 수가 없다. 고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주님의 말 씀으로 명해야 한다. 주님말씀으로 마른 뼈들이 능히 살고 가 죽을 두루고 생기가 생겨 사망을 당한 자가 극히 큰 군대를 이루었다. 우리도 주님말씀으로 명하는 삶을 가지자. .......<<다니엘>>.............. ▶ 240.더 나은 성도 단1:8-21 히7,8장은 더 나은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좋은 소망,좋은 언약,아름다운 직분,좋은 약속, 좋은 언약의 중보로 말씀한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바벨론 왕궁에서 수업을 마친 후에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것을 알게 되었는데 무엇인가? 1.지혜적인 면에서 다니엘과 3친구는 왕궁에서 3년간의 수업을 받은 후에 그 지 혜와 총명이 온 나라의 박수와 술객보다 십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자는 남보다 다른 자를 쓰 신다. 오늘 우리도 감사 순종 믿음 봉사 은혜 능력 은사 봉사 의 지혜적인 면에서 남보다 뛰어난 자가 되자.그러기 위해서 연구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자가 되자. 2.건강적인 면에서 이들은 뜻을 정한 다음에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 채식과 물로만 10일동안 시험하게 하였다.그리고 난후에 보니 왕의 진미를 먹는 소년들보다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 하게 되었다. 고로 믿음의 사람들은 건강적인 면에서도 더 나 아보여야 한다. 3.신앙적인 면에서 다니엘과 그의 3친구들은 하나님앞에서나 사람앞에서도 인정 받는 바르고 진실한 삶을 살았다. 그리할 때에 몸도 마음도 신 앙도 더럽히지 않도록 매일 기도생활과 흠이 없는 도덕적인 생활을 하였다. 하나님앞에서 바른 삶을 살았다. 그리하여 하나 님과 함께하고 하나님께서 지켜주는 자로 살았다. 4.축복적인 면에서 이들은 바벨론 나라에 잡혀온 포로로서 바벨론 나라의 국무 총리가 되었다. 수많은 변화가 있는 바벨론 대제국에서 한 왕 도 아닌 5왕을 섬기는 자가 되었다. 하나님만을 드러낸 자로 살았다. 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이는 하나님안에서 바르게 신 앙을 지키면서 살았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리하자. ▶ 241.다니엘과 같이 단1:8-20 예레미야 이사야 에스겔과 함께 4대 선지자 중에 하나로 불리우는 하나님은 심판이시다라는 뜻을 가진 다니엘, 그는 바벨론 나라로 포로로 끌려가서 바벨론 나라를 섬긴 자이다. 그러면서도 신앙을 지키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낸 자이다. 1.유혹을 당하면서 산 자이다. 조상들이 죄를 지었기에, 하나님의 뜻을 저버렸기에, 우상을 섬 겼기에 포로로 끌려간 다니엘,왕의 명에 의하여 하나님의 이 름을 귀신의 이름으로 바꾸게 되었다. 갈대아 학문과 방언을 배우게 되었다. 왕의 진미로 유혹을 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는 어떠한 환경속에 있다해도 신앙을 지키는 자가 되었다. 2.뜻을 정하면서 산 자이다. 학문과 방언과 왕의 진미와 이름을 바꿈으로 유혹할 때에 그 는 그의 3명의 친구와 함께 뜻을 정했다.먼저는 마음으로 부 터 진미나 포도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하였다. 하나님 만을 목표로 삼았다.그리고 행동으로 옮기는 자가 되었다.그 리하여 신앙지키기 어려운 외국에서,포로의 생활속에서 신앙 을 지키면서 사는 자가 되었다. 3.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면서 산 자이다. 하나님은 반석이시요 피난처시요 방패와 요새가 되신다. 그런 하나님에게 자신의 전부를 맡긴다. 채식과 물을 먹을 때도 그 랬다. 사자굴속에 들어갈 때도 그랬다. 꿈을 해석할 때에도 그 랬다.환상의 일을 알아낼 때에도 그랬다.그때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다. 그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여 주셨다. 4.기도하면서 산 자이다. 그는 권력 물질 어떤 인간을 의지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문제 가 닥칠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를 함으로 하나님의 힘으로 모 든 문제를 해결하면서 살았다. 그는 문제문제가 생길때마다 기 도하는 일을 쉬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오늘 우리들 중에 어 떤 문제가 있는가? 뜻을 정하고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자. ▶ 242.다니엘의 결심 단1:8-16 우리는 믿음생활을 하면서 때로 작정기도도 하고 금식도 하면서 여러가지 봉사도 한다. 그렇다면 믿음의 조상 다니엘은 포로의 위치에서, 방백의 위치에서,이방민족과 우상섬기는 나라에서 어떻게 결심을 하면서 기도생할을 하였는가? 다니엘의 결심은 1.자기를 더럽히지 않기로 결심했다(1:8) 왕이 흠이 없고 아름다우며 모든 재주에 통달하며 지식이 구 비하며 학문에 익숙하며 왕궁에 모실만한 자를 택하여 이방 신의 이름으로 바꾸고 왕의 진미와 포도주로 다니엘과 그의 친구에게 먹이려고 할 때에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이로한 것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으려고 뜻을 정하였다. 우리도 세상 의 것으로 신앙과 양심과 몸을 더럽히지 않도록 결심을 하자. 2.감사하면서 살기로 결심했다(6:10) 다니엘은 방백으로서 아무 그릇함이나 허물도 없었다. 그러나 그를 모함할려고 하는 많은 방백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부 족함이 없게 행동하였다. 단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이것으로 어려움을 당하기도 하였으나 그의 감사 는 끊이지 않았다. 우리도 감사하면서 살기로 결심하자. 3.기도응답을 받기로 결심했다(9:19) 다니엘은 주여 기도를 들으소서라고 하였다. 죄를 용서하여 달 라고 하였다. 들으시고 행하소서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하나님 의 뜻대로 살기 위해 늘 기도하는 삶을 살았다. 어떤 때는 기 도응답은 임했으나 바사국군이 이를 막았어도 계속해서 기도 함으로 응답을 받았다.우리도 응답받기 위해 기도하자. 4.겸손히 살기위해 결심했다(10:12) 역사적으로 교만한 자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상실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저주를 받는다. 그러나 겸손한 자 는 하나님께서 은혜와 축복을 더하신다. 다니엘도 하나님의 말 씀을 깨달으려고 스스로 겸비케 하려고 결심을 하였을때 하 나님의 응답을 받게 되었다. 우리도 겸손히 살기위해 결심하자 ▶ 243.다니엘의 3친구의 신앙 단3:13-18 누구든지라는 엄명하에 왕의 신상에게 절하지 않으면 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는다는 명이 내렸다. 그리고 절하지 않자 이제라도라고 하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나 이들은 그리아니하실지라도라는 대답으로 왕의 명이라도 거절을 한다. 1.하나님경외의 신앙 육체를 불사른다고 하는 급박한 상황이다. 그러나 불이냐 우상 이냐하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더 두려워한다. 또한 비겁하게 목숨을 구하는 이기적인 삶보다도 확신있는 신앙의 삶을 선택한다. 그리고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를 확신하며 조 금도 양보하지 않고 지금까지 섬기는 하나님만을 신뢰하며 그 하나님만 의지한다고 한다. 어떤 죽음이와도 신앙의 절개를 지키겠다고 한다. 2.하나님중심의 신앙 이들은 분명 자기들이 풀무불속에 던져진다고 하여도 하나님 께서 건져주실 것을 믿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건져주지 않는 다고 하여도 그들은 하나님만을 섬기겠다고 한다. 곧 나의 뜻 보다 하나님의 뜻,내 중심보다도 하나님중심으로 살겠다고 한 다. 오직 하나님중심으로만 살겠다고 한다. 3.죽음을 각오한 신앙 죽음앞에서도 하나님만을 계속적으로 섬기겠다고 한다.그리아 니하실지라도라고 하면서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주장하고 믿 고 나아간다.그때에 이들의 신앙은 더욱 빛나고 하나님이 원 하시는 지켜주시는 보호하시는 아름다운 길로 나가게 된다. 4.이러한 이들에게 풀무불속에 던져졌지만 하나님과 함께하는 경험을 체험하게 된다.불속에서도 주님을 만났고 그속에서 지키심을 받는다.구 원함을 받는다. 오히려 원수들을 물리치게 되었고 하나님의 영 광을 드러내게 되었다. 우리도 신앙을 바로 지키자. 그리하여 나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영광을 거두시게 하자. ▶ 244.하나님의 저울 단5:17-28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가 신앙생활하는 모든 것을 달아 보신다면 어떻게 하실 것인가? 그리고 점수를 주신다면 어떻게 하실 것인가?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시는 분이시다. 생각과 미래와 모든 것을 보시는 분이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저울은? 1.우리의 믿음을 달아보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달아보시고 과연 칭찬받는 믿음인 지 책망받는 믿음인지, 십자가를 질 믿음인지 아닌지,세상을 사랑하는 믿음인지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는 믿음인지, 환란과 핍박을 이기는 믿음인지 아닌지, 예수님을 기초로 세운 믿음인 지 아닌지를 달아보신다.그때 인정받는 자가 되자. 2.우리의 삶을 달아보신다. 우리가 신앙생활,기도생활, 봉사생활을 하는 데에 있어서 얼마 나 책임있게 진실하게 충성되게 감사하게 기뻐하면서 살아가 고 있는지를 달아보신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기준에서,말씀안 에서, 공의에서,십자가와 부활을 놓고 하나님의 저울로 달아보 신다.그때 우리는 입으로만,생각으로만, 느낌으로만의 신앙생활 하는 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기준에서 인정받는 자가 되자 3.우리의 경외를 달아보신다. 성도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심판을 두려워하고 구 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억제할 것을 억제하고 해야할 것을 하 면서 살아야 한다.벨사살왕은 하나님의 제사때에 쓰는 성물을 가지고 술을 부어서 마시는데 사용하였다.두렵고 떨림이 없이 사용하였다. 우리는 하나님 경외에서 인정받는 자가 되자. 4.우리의 순종을 달아보신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내 뜻에 맞는 것도 있고 안맞는 것도 있다.하고 싶은 일도 있고 하기 싫은 일도 있다. 이때에 우리 는 사람의 저울에 비추어 보고 생각하고 말고 하고 행동에도 옮긴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기준에서 우리의 순종을 달 아보신다. 이때에 하나님의 기준에서 인정받는 자가 되자. ▶ 245.기도하는 사람 단6:1-28 기도는 평범한 사람을 위대하게, 무능력한 자에게 능력을,냉냉한 자를 은혜로운 사람으로 능력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행복보다 더 큰 행복을 마련해 준다. 적고 작은 것을 가지고 만족하게 한다. 고로 기도는 신앙의 필수품이다. 1.기도하는 사람에게 돌파구가 있다. 충성된 사람 다니엘 그에게 닥친 곤경은 인간의 힘으로 해결 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왕도 어인을 찍어놓고 어찌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도하는 다니엘에게는 문제될 것이 없 음은 기도속에 돌파구가 있기 때문이다. 성도에게도 인간의 힘 이나 수단과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곤경은 찾아오나 기도 하는 사람에게 돌파구가 있다. 2.기도하는 사람에게 방해꾼이 있다. 매일같이 신앙을 지키면서 기도하는 다니엘을 미워하는 자가 있다. 그래서 다니엘이 하는 기도를 못하게 한다. 사자굴을 만 들어 놓고 기도하는 자를 사자굴에 넣도록 한다.곧 믿음의 사 람에게 기도하는 사람에게 방해하는 방해꾼이 있다. 그러나 기 도하는 사람에게는 방해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3.기도하는 사람에게 신비한 체험이 있다. 기도하는 다니엘이 사자굴에 넣어졌다. 들어가기가 무섭게 뼈 까지 부숴뜨릴 사자의 입이 기다리고 있는데 사자가 천사의 힘으로 입이 봉해져 힘을 쓰지 못한다. 왕이 다니엘을 위해 금 식하고 침수를 페한다. 왕의 입으로 다니엘의 하나님을 찬양한 다. 이러한 것이 바로 기적이요 신비한 체험이다. 4.기도하는 사람에게 형통함이 있다. 자신앞에 닥친 곤경을 두고 신앙을 지키는 다니엘,믿고 기도 만하는 기도하는 사람에게 사자굴속에서도 구원받고 원수를 물리치고 왕의 입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응 답이 있다.여기에 감사가 있다. 기쁨이 있다.말로 다할 수 없는 축복이 있다. 인생의 길은 험하나 기도하자. 그때 형통이 있다. ▶ 246.불굴의 신앙 단6:10-24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어떠한 환경이나 처지에서라도 하나님만 바라보고,하나님만 믿고, 담대히 살아야 한다.그때에 성공자 승리자가 된다. 다니엘도 역시 그러했다.그의 처지는 어려운 처지였으나 오히려 신앙을 지킴으로 포로의 삶에서 빛을 내게 되었다. 1.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신앙 왕의 진미가 먹기에 좋아도 먹지 않았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 에 순종하기 위해서이다. 어인이 찍힌 것을 다니엘은 알았다. 그러나 신앙에 흩어짐이 없이 전에 행하던 대로 신앙을 지킨 다.자녀 건강 생활 직장 때문에 신앙을 버리는 자가 있다.먹 는 것으로 자기를 더럽히는 자가 있다. 우리는 주만 바라보자. 2.기도하는 신앙 사자굴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 것도 안다. 그러나 전에 행하 던 대로 기도한다. 평상의 모습과 변함이 없다. 하나님은 가장 고난스럽고 어려울 때에 함께 한다. 소나무는 모든 낙엽이 떨 어질 때에 진가가 나타난다.성도도 환란시에 알아본다 .촞점이 흐려지면 안된다. 에스더의 금식통한 기도가 유대인을 살렸다. 거룩을 유지하는 법도 육을 이기는 힘도 기도이다. 기도로 원 수를 사랑하고 완고한 마음을 부숴뜨리고 문제해결을 본다. 3.좌절하지 않는 신앙 언제 크냐,성공하냐,성장하느냐? 환경보고 실망한다.다니엘은 열번 찍어도 안넘어 가는 자였다.바벨론 사람도 아니다. 포로 였다.그렇지만 좌절하지 않는다. 이는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패자였고 낙오자였지만 성공자로 살아가자. 4.감사하는 신앙 다니엘은 미래를 보는 자였다. 그러기에 사자굴에 들어가더라 도 미리 감사가 나온다.의심이 없이 믿고 기도한다. 신앙의 바 른 지식을 가지고 오히려 이런 환란과 핍박뒤에 하나님의 깊 으신 뜻이 있음을 알고 감사한다. 그러하자 믿음그대로 모든 대적을 물리치는 감사가 있었다. ▶ 247.하나님의 위로 단10:10-21 우리가 힘써 하나님의 일을 할때에 하나님께서 도와주거나 하나님의 위로가 없으면 아니된다. 왜냐 우리 인간은 연약하기 때문이다. 그때에 하나님의 깊으신 뜻과 위로를 알고 받으면 이 모든 것은 감사로 은혜로 남게 된다. 1.엘리야를 위로하신 하나님 엘리야가 아합과 이세벨과 싸운다. 악한 마귀 권세와 바알과 아세라 신상을 섬기는 자들과 싸운다. 그때에 엘리야 혼자 일 을 할때에 지칠 때가 있으나 하나님은 사르밧 과부를 보내셔 서 돕기도 하시고 까마귀를 보내서 먹을 것을 공급받게 하시 고 오바댜를 통하여 깨닫게도 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천사를 통하여 먹을 것과 물을 공급받고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는 위로의 말을 듣게 하신다. 2.다니엘을 위로하신 하나님 다니엘이 바벨론의 여러왕을 섬기면서 하나님의 크신 뜻을 깨닫고 기도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에 3주동안 금식하며 슬퍼하며 겸비케 하면서 기도한다.그러나 바사국군이 응답을 가지고 오는 천사를 막아 응답이 늦었으나 미가엘 천사장의 도움으로 은총을 크게 입은 다니엘아 하면서 위로하고 평안 주고 강건하라 한다. 그때에 곧 힘을 얻게 된다. 3.수고한 믿음의 조상을 위로하신 하나님 오랫동안 방주를 예비한 노아가족, 방주에 들어가서 구원받을 때에 하나님의 위로가 있다. 이삭을 바치면서 믿음을 드릴 때 에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다. 고린도후서 에 나타난 환란속의 위로, 수많은 핍박과 고난속의 위로가 감 사와 하나님의 은혜로 나타난다. 4.충성된 자를 위로하신 주님 잘했다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맡기우고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게 한다.그리고 하늘 나라에 가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은혜아래에 거한다. .......<<호세아>>.............. ▶ 248.이스라엘의 하나님 호14:1-9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지은 죄에 대해 회개를 촉구하시고 회개하는 자에 따르는 축복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참회한 백성들에게 패역을 고치시고 용서해 주실 뿐만 아니라 이전보다 더욱 사랑하시고 그에 대한 번영과 보호와 생명을 약속하신다. 1.고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저희의 패역을 고치신다고 하신다. 이는 영혼을 고쳐 서 구원하시고 육체를 고쳐서 건강하게 하시고 삶을 고쳐서 인격적이며 신앙적인 존재가 되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고치시는 패역은 배신과 불신을 의미하는데 이는 이스라엘이 육체적으로 병들고 인격적으로 병들게 된 원인이 배신과 불 신인데 이를 고쳐서 바르게 하신다는 것이다. 2.사랑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고치실 뿐만 아니라 즐거이 사랑하신다고 하신다.이 는 1)지난 날의 허물이나 잘못을 들추어 내면 사랑할 수 없 으니 이를 불문에 붙이겠다는 것이다. 2)마음에 들면 사랑하고 안들면 사랑 안하는 것이 아닌 천국에 이르기까지 사랑한다 는 것이다. 3)즉흥적인 사랑이 아닌 사랑을 위해 준비하신 사 랑을 하신다는 것이다. 3.이슬,백합화,백향목,감람나무같은 하나님 이슬은 생물에 필요한 수분을 공급하여 식물을 자라게 하고 죄를 회개하고 돌아올때 백합화처럼 아름답고 향기롭게 하고 백향목과 같이 견고하게 뿌리를 박고 가지는 퍼지며 그 아름 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향기는 백향목같이 번성한다. 4.열매를 주시는 하나님 이스라엘이 곡식같이 소성하고 포도나무와 같이 꽃이 피고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나무와 같이 되고 우상과 상관없는 백 성이 되고 하나님께서 돌아보아 열매를 맺게 하신다고 한다. 곧 하나님을 떠나면 나무열매도 없으나 하나님의 손길을 통 해 열매를 맺게 하신다는 것이다. .......<<요나>>.............. ▶ 249.생명을 살린 요나 욘3:1-10 구약시대에 복음을 전한 요나,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가다가 바다에 던져진 요나, 그러나 하나님의 명에 순종하여 주의 복음을 전파한다. 그리하여 죄악 가운데에 빠진 니느웨 백성을 구원한다. 이렇게 생명을 살린 요나는 1.회개하며 전도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분으 로 알고 자기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회개했다.그리고 하나 님의 명대로 니느웨로 가서 복음을 전했다. 후회는 자신에게 하는 것이고 회개는 하나님에게 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뜻대 로 사는 것이다. 그리할때 요나도 니느웨 백성도 살게 되었다. 2.순종하며 전도했다. 하나님의 명에 불순종하다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요나, 이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니느웨 백성에게 말씀을 전파한다. 그리할때에 니느웨 백성을 구원하게 되었다. 성도는 말씀을 듣 든지 안 듣든지 전파해야 한다. 순종해야 한다.하나님의 뜻을 전파해야 한다. 그리할때 요나도 니느웨 백성도 살게 되었다. 3.인내하며 전도했다. 요나는 한번 징계를 당하고 나서 인내하며 복음을 전한다.그 리고 왕으로부터 금수에 이르기까지 회개하는 것도 보았다. 또 초막을 지어놓고 기다리기도 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랑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참고 견디며 때로 실수도 부족된 점도 나타내었지만 인내하여 자신도 니느웨 백성도 살게 되었다. 4.하나님 말씀대로 전도했다. 요나는 자기의 생각이나 사상이나 철학을 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생각대로 도망치다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고 하나님의 뜻만을 전 했다. 그때 모든 니느웨 백성들은 하나님앞에 금식하며 기도했 다. 그리하여 요나도 니느웨 백성도 살게 되었다. ▶ 250.참된 회개 욘3:3-10 진정한 회개는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한다. 자신을 바라보게 한다.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한다. 자신을 거꾸러 뜨리게 한다.하나님의 말씀을 그리워 하게 한다.삶의 변화를 가져오게 한다. 모든 사람들이 주안에서 하나가 되게 한다. 참된 회개는 1.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인다. 요나 선지자가 두 번째 하나님의 음성의 듣고 니느웨 성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한다. 그러자 모든 백성들이 통회자 복하면서 회개하기에 이르렀다.그리하자 하나님께서도 뜻을 돌이키시고 그들에게 내리고자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신다. 이와같이 회개는 하나님의 마음도 움직인다. 2.사람의 마음도 움직인다 요나가 하나님의 분부에 따라서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멸 망하리라는 말씀을 전하자 이 말씀을 듣고 백성들은 금식을 하면서 회개하기에 이르렀다.이러한 사실은 니느웨가 멸망하 기를 기다린다.요나도 깜짝 놀랐을 것이다. 이와같이 요나가 깊이 회개할 때에 니느웨 백성들도 변화를 가져온다. 3.세상도 변화를 가져온다. 요나의 전도를 받자 니느웨 백성들은 금식을 하며 통회자복 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각자 악한 길에서와 강포에서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왕으로부터 백성까지 일어나 조복을 입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다. 그리고 금수에 이르기까지 금식하면서 회개하며 강포에서 돌이키게 되는 변화를 가져왔 다. 이와같이 요나가 회개할 때에 세상도 변화를 가져왔다. 4.하나님께로 가까이 오게 되었다. 요나의 참된 회개로 니느웨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었다. 9절에 하나님이 혹시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 사 우리로 멸망치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 겠느냐? 한 사람의 참된 회개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한다. 우리가 살길도 참된 회개밖에 없다. .......<<미가>>.............. ▶ 251.하나님께서 구하시는 것 미6:6-8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해주신 것이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은 이런 하나님을 잊고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싯딤에서부터 길갈까지의 일을 추억하라.그리하면 나 여호와의 의롭게 행한 것을 알리라고 하신다. 이러한 민족에게 구하시는 것은 1.공의를 행하는 것 하나님께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하면서 내가 번제로 일년된 송아지나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같은 기름이나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위하 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것인가? 아니다.하나님께서 구하시는 것은 공의를 행하며 정직하고 깨끗한 삶을 살고 주의 말씀대 로 의의 율례와 도를 마음에 간직하며 지켜 행하는 것이다. 2.인자를 사랑하는 것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다윗이 있다. 그는 많은 실수도 했고 간 음도 했고 거짓말도 살인까지도 했다.그런데 그런 그를 마음 에 합한 자라고 했다.그는 연약한 인간에 불과했으나 하나님 과의 관계에 있어서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이다. 입술로만이 아닌 마음으로 전인격으로 뜨겁게 사랑했기 때문이다. 3.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 하나님이 구하시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다. 그리할 때 하나님의 마음을 안다. 하나님의 뜻을 안다.하나님의 비밀 을 안다. 하나님의 나아갈 바를 안다. 그런 자는 주 안에서 자 기를 낮추고 주님만을 높인다. 주님만을 위하여 살고 주께만 영광을 돌린다. 그리고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깨뜨리고 하나님 이 원하시는 삶을 산다. 4.순종하는 것 하나님은 수양의 기름이나 제사보다 순종을 원하신다. 고로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뜻에 삶에 순종하기를 원하신다. 찬송 기도 감사 어린아이같은 자들에게 나타나심을 원하신다. 그래서 순종의 삶을 구하신다. .......<<하박국>>.............. ▶ 252.사슴의 발과 같게 할려면 합3:16-19 우리의 환경은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하고 우리의 손을 놓게 할 때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사는 자는 절대로 낙망하거나 실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힘이 되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발을 사슴과 같게 하시기 때문이다. 사슴의 발은 1.사슴의 발은 힘이 있다. 사슴의 발은 사람 보기에는 약해보이고 가늘게만 보인다.그러 나 사슴이 뛸 때에는 힘있게 뛰어간다.그리하여 가시덤불도 단숨에 뛰어넘고 개울물도 주저하지 않는다. 성도도 겉으로는 약해보이나 세상 사람들이 가지지 않는 힘이 있다. 그리하여 시험과 문제속에서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뛰어넘고 절망하지 않으며 성령충만하여 모든 불가능을 정복한다. 2.사슴의 발은 멀리 뛴다. 목이 긴 사슴은 멀리 본다.그리고 멀리 뛴다. 그리하여 눈에 보이는 이익만을 보지 않고 먼곳을 보고 뛴다.성도도 세상의 이익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비록 부족하고 연약하다고 하 여도 하나님의 위로와 축복으로 기뻐하고 즐거워 한다. 원망과 실망이 아닌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는 미래만을 보고 산다. 3.사슴의 발은 빠르다. 사슴은 맹수를 만나면 빠르게 뛰어간다. 그리하여 맹수도 뛰고 있는 사슴을 잡지 못한다. 그러나 한눈을 팔고 있는 사슴은 잡 혀 죽게 된다. 성도도 발걸음이 느릴 때는 마귀에게 붙잡힌다. 심령에 병이 든다.그러나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열심 으로 신앙생활을 하면 어떤 마귀도 틈을 타지 못하게 된다. 4.사슴의 발은 높은 곳만을 다닌다. 사슴은 깨끗한 짐승이다. 그래서 더럽고 지저분한 곳에서는 살 지 않는다.곧 고산에서만 산다. 성도도 하늘나라의 삶을 좋아 한다. 고로 불의하고 거짓되고 악한 것을 싫어한다. 먹고 마시 고 생활하는 모든 것을 구별되게 한다.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살고 의로운 길로만 간다. .......<<말라기>>.............. ▶ 253.쌓을 곳이 없는 복 말라기 3:7-12 오늘은 육신의 복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세상에 보면 부요하게 사는 사람도 있고 가난하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질이 있으면 넉넉하고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또한 물질이 있어야 가난한 사람을 도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부요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인간을 만드셨을 때 에덴동산은 풍요롭고 넉넉한 곳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갖추어 주신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8장 9절에 말씀합니다. “우리 주님이 부요한 자로서 가난하게 되심은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말씀으로 부요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아들을 너희에게 주었는데 더 주지 못할 것이 무엇이겠느냐?” 주님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받을 수 있는 자와 자격이 있는 자에게 주십니다. 제가 소망교회 있을 때 현대 아파트 한 50평 되는 곳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 댁에 심방을 간적이 있는데 예배 후에 우십니다. 알고 보니 아들 딸 며느리가 당신을 위해서 항상 찾아뵈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할머니가 할아버지가 남기신 유산을 모두 물려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찾아오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외롭고 고독해서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등록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예수님만을 위해 살고 남은 아파트 재산을 자식들에게 절대 주지 않고 교회나 불쌍한 사람에게 나눠주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얻는 교훈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입고 먹고 쓰는 모든 것. 모두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 드리기에 인색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시고 더 주시고 넘치도록 주시길 원하는데 우리가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많은 복을 받기를 원해서 이 말씀을 전합니다. 말씀대로 ‘쌓을 곳이 없도록 붇는 하나님의 복’을 받기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 헌금을 드리는 것, 그것은 주정헌금인데 이스라엘은 반세겔을 부자나 가난한 자나 드리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주머니 뒤져서 있으면 내고 없으면 안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일 헌금은 정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한번은 외국에 여행하시는 분이 여행 중에 예배 헌금을 드리지 못하여 작정헌금을 우편으로 보낸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 그런 헌금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저도 모든 예배에 정해진 헌금을 작정하고 드립니다. 교회 성도님들 가운데도 정해진 헌금을 매주 감사함으로 드리는 분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본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정성으로 드리며 즐겨내는 자를 하나님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십일조에 관한 것입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라. 내가 하늘 문을 열고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기본은 무엇입니까? 매일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매주 예배를 드리며 전도하고 온전한 십일조를 마땅히 드리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바로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을 드리지 않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은혜에 감사함으로 마땅히 드리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는 복을 받고 그 복을 모든 자손에게 나눠주는 자가 될지어다.” 또한 그 후손 야곱이 “나의 가는 길을 지키시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면 내가 얻은 것의 십일조를 주께 드리겠습니다.” 라고 하나님께 말했습니다. 레위기에도 말씀합니다. “토지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하나님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계와 거기에 충만한 것과 그 모든 것이 내 것이니라.” 하나님은 부요하신 분으로 우리의 믿음, 그 신앙을 보고 복을 주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미국의 큰 보험회사의 사장인 윌비 박사는 어려움 가운데 보험회사의 사원으로 취직해 그 회사의 사장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그 큰 회사의 사장된 원인이 무엇이었냐?’ 고 묻습니다. 그는 말씀에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는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는 내가 그를 멸하리라.”라는 말씀이 자신의 마음에 와 닿았고 말라기의 십일조 말씀을 보고 그 말씀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존중하는 것임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말단 사원부터 십일조를 온전히 하여서 그 자리에게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미국의 대통령이 취임시에 성경 앞에서 선서하고 목사의 기도로 국회가 개헌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넘어 십의 구조까지 드리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록펠러는 자신의 십일조를 관리하는 사람만 40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알렉산더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 모르겠다면 좋은 방법이 있다. 온전한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려라 네 삶과 수입이 달라질 것이다.’ 오늘 말씀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라기 선지자 때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으로부터 돌아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데 그들이 자신의 집을 꾸미는 데 열심을 내게 되면서 하나님의 성전 건축이 중단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릴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않은 것입니다. 학개 선지자를 통해 당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순종치 아니하므로 너희 모든 소득을 불어버리겠다.” 잠언 3장 9-10절에 말씀합니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이명박 서울 시장도, 그 형 이상진 장로도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 복을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시고 더 주시고 넘치도록 주시기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이 복이 우리 성도님들께 있기를 축원합니다. ▶ 254.하나님의 약속된 언약 말라기 1장 1~5절 여호와께서 말라기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경고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무케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시랑에게 붙였느니라 에돔은 말하기를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나 황폐된 곳을 다시 쌓으리라 하거니와 나 만군의 여호와는 이르노라 그들은 쌓을지라도 나는 헐리라 사람들이 그들을 일컬어 악한 지경이라 할 것이요 여호와의 영영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 할 것이며 너희는 목도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지경 밖에서 크시다 하리라 -------------------------- 성전재건후 70여년이 지난 때에 하나님의 약속된 언약이 이루어 지지 않자 매너리즘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과 불평을 늘어 놓습니다. 이때에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은 변함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고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매너리즘에 빠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비전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혼과 사별로 깨어진 가정때문에 매너리즘에 빠질것이 아니라 그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계획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며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든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귀기울여야 합니다. 이혼했다고 정죄감에 빠지지 말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죄를 고 하십시요 이혼으로 사별로 매너리즘에 빠지셨습니까? 세상의 흉흉한 소리를 듣지 말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길 바랍니다. 문제속에서 하나님을 붙잡고 비젼을 발견하고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계획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 255.잠에서 깨어나야 할때 말라기서 3:1-2 내가 나의 특사를 보내겠다. 그가 나의 갈 길을 닦을 것이다. 너희가 오랫동안 기다린 주가 문득 자기의 궁궐에 이를 것이다. 너희가 오랫동안 기다린 그 언약의 특사가 이를 것이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그러나 그가 이르는 날에 누가 견디어 내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살아 남겠느냐? 그는 금과 은을 연단하는 불과 같을 것이며, 표백하는 잿물과 같을 것이다. 로마서 13:11-12 여러분은 지금이 어느 때인지 압니다.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가 벌써 되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우리의 구원이 더 가까워졌습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마태복음 8:23-26 예수께서 배에 오르시니, 제자들이 그를 따랐다. 그런데 바다에 큰 풍랑이 일어나서, 배가 물결에 막 뒤덮일 위험에 빠지게 되었다. 예수께서는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다가가서 예수를 깨우며 "주님, 살려 주십시오. 우리가 죽게 되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왜들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 하고 말씀하시고 나서, 일어나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바다가 아주 잔잔해졌다. 오늘 설교는 참 어렵습니다. 대림절 절기가 시작되었으니 대림절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또 이 교회 창립 55주년입니다. 그러니 교회 창립 55주년 이야기도 해야겠고, 역시 설교니까 오늘 본문의 메시지도 전해야 합니다. 이 세 가지를 다 해야겠는데 시간은 세 배를 주지 않고, 오히려 성찬식 때문에 다른 주일보다 설교를 짧게 해야 하니, 대단히 힘들게 생겼습니다만, 여러분들은 머리가 아주 좋은 분들이니까 열 마디를 한 마디로 표현해도 잘 알아들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첫째로 생각할 것은 오늘 읽은 말라기의 대림절에 관한 본문입니다. 말라기서는 메시아가 오실 것을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너희가 오래 기다리던 너희의 주가 문득 자기 궁궐에 이를 것이다. 그가 이르는 날에 누가 견뎌내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살아남겠느냐!” 구약시대의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한 메시아가 오실 것을 언제나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그 메시아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나타났는데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그렇게도 기다리던 메시아를 배척하고 죽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는 말라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궁궐에 나타나야 됩니다. 만 왕의 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분 예수는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메시아는 이 세상에 와서 지금까지 잘못 살아온 사람들, 믿음이 적은 모든 사람들을 심판합니다. 오시는 메시아가 바로 이렇게 불의를 심판할 그런 분이라는 것을 잘 안 사람이 세례 요한입니다. 또한 세례 요한은 바로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이 몰랐던 것이 있습니다. 요한은 “그분이 오시면 도끼로 나무를 찍어내듯이 모든 불의한 것을 심판해 버릴 테니까 너희들은 그 심판을 면하기 위해서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신 예수님은 이러한 무서운 예수님이 아니었습니다. 무서운 심판의 메시아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불의에 눈을 감고 심판을 건너뛴 것은 아닙니다. 그 무서운 심판을, 그 아래에서 살아남을 자가 없는 그 심판을 예수님 자신이, 메시아 자신이 스스로 받고서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이것이 대림절의 근본적인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예수를 메시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메시아를 죽였을 뿐만 아니라, 다른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왜 그랬느냐 하면 그들은 바로 궁궐에 나타나는 메시아, 그리고 불의한 모든 이를 심판하고 없애는 메시아를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유대교와 기독교가 다른 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도 바로 이 예수님을 바르게 맞이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참으로 답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대림절을 지킬 때마다 설교대와 후드에 이렇게 보라색을 씁니다. 이 보라색은 회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우리 사고를 깨끗이 뒤집어 보지 않으면 우리 역시 유대인이 되어버리기 쉽습니다. 정말 1900년대를 지나서 2000년대 오늘 우리에게 오시는 예수님, 오늘 역사 속에 오시는 예수님, 그분을 우리가 바르게 맞이하기 위해서는 20세기까지 살아온 우리의 모든 생활과 생각을 한번 뒤집어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새로운 마음, 빈 마음을 가지고 이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지 않으면 우리도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를 다시 기다리게 되기 쉽다는 말입니다. 두 번째로 창립 55주년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 교회가 첫 예배를 드리던 때, 55년 전 그날은 12월 2일이었으니까, 오늘보다 하루 전입니다. 그날의 첫 예배는 내가 인도를 했고, 우리 가운데 목사라고는 조향록 젊은 목사 한 분밖에 없었는데, 그분이 설교를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오후 2시에 조향록 목사가 와서 그 당시의 이야기를 하실 것입니다. 저는 예배 인도하던 그 당시 목사도 장로도 아니고 28세의 한 청년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조향록 목사처럼 다른 교회로 떠나가지 않고 오늘까지 이 교회에서 여러분의 사랑을 받으며 55년을 살아왔습니다. 이 교회 안에서 55년을 살아온 제가 그 이야기를 하자면 아마 한없이 한없이 많은 이야기가 이어질 것입니다. 그 많은 이야기를 창립 40주년 때의 한 이야기에다가 요약하려고 합니다. 창립 40주년 되는 때에 우리 교회 성가대가 작곡을 하여 칸타타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그래서창립 40주년이 되는 날 저녁에 음악회를 했는데 그때 칸타타 제목이 ?광야에 세운 십자가?였습니다. 그리고 7일과 8일 이틀 동안에 연극을 했습니다. 그 연극은 이강백 집사가 대본은 쓰고 직접 연출을 했고, 그때에 주역, 말하자면 내 역할을 한 사람이 박상영 집사입니다. 연극 공연을 이틀 동안 성황리에 마쳤습니다. 여기에서 왜 이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40주년 때의 우리 성가대원들이 생각한 우리 교회의 모습은 “들판에 세운 십자가”였다, “광야에 세운 십자가”였다는 점을 말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강백 집사가 본 경동교회는 40년 동안 “항해하는 배”였다 그 말을 하려는 것입니다. 이 평신도들이 경동교회를 바르게 본 것입니다. 지난 55년 동안 이 교회는 광야에 세운 교회였다 그 말입니다. 광야는 예수님이 시험받으신 곳입니다. 떡만 있으면 다 해결된다는 물질만능주의, 권력만 잡으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권력지상주의, 그리고 예수를 믿고 기도하고 헌금 많이 하면 복을 많이 받고 기적도 나타난다는 이 광신적인 기복종교의 시험입니다. 이러한 풍조 속에서 이 교회가 해온 일은, 광야의 예수님처럼 바로 이 경제지상주의, 개발독재와 부단히 싸워왔고, 그리고 또 권력만능주의와 싸워왔고 그리고 한편으로는 광신적인 기복종교와 싸워온 것입니다. 이 교회는 그야말로 빈 들판에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십자가를 진 길이었습니다. 또 이강백 집사가 본 대로 배를 타고 항해하는 것이 경동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오늘 마태복음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배에 제자들이 타고 있었는데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거센 풍랑에 빠져죽게 되니까 당장 예수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때에 잠을 자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역시 이런 거센 풍랑 가운데에서 항해를 해왔습니다. 일일이 이야기할 것 없습니다. 바로 이 교회가 세워진 초창기는 우리나라의 좌익과 우익의 충돌이 논쟁의 차원을 넘어서 서로 잡아다 때리고 죽이고 테러하던 때였습니다. 우리 교회 뒤에 높은 빌딩이 하나 있었는데 이 빌딩에서는, 반공청년들이 공산주의자들을 쳐죽이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습니다. 이러한 좌우의 치열한 대립 가운데서 우리 교회는 때로는 좌익테러를 당하고 때로는 우익테러를 당했습니다. 밤에 예배드리다가 우익청년들이 우리를 공산당 무리들이라고 쳐들어오는 바람에 교회의 뒷담을 뛰어넘어 도망치던 생각이 지금도 납니다. 기독교 안에는 극보수적인 세력과, 서울대학을 중심으로 한 무교회주의 세력이 있었고, 이들 틈바구니에서 작은 교회가 시달렸던 것을 기억합니다. 6.25전쟁이 모든 사람에게 비극이었습니다만, 아마도 우리 교회처럼 큰 곤란을 겪은 교회는 없을 것입니다. 교회가 두 번이나 폭격당해서 많은 신도들이 죽었고, 청년들이 많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의용군으로 잡혀가고 행방불명이 되는 그러한 고된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4.19라는 거대한 사건이 생길 때 지금도 우리 교회에 나오시는 이윤식 집사가 서울대학 학생회 회장이었고 이영일 집사가 간사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났습니다만 우리 교회 나오는 박상헌씨가 고려대학 학생들을 끌고 4월 18일에 데모하러 나왔습니다. 이렇게 우리 교회에 나오는 학생들이 지도적인 위치에서 4.19를 일으키기 때문에 자연히 큰 풍랑이 이 교회를 덮친 것입니다. 그 후에 소위 5.16 군사혁명이 일어났고, 긴 세월동안 우리는 많은 시련을 겪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들이 탄 배는 계속해서 폭풍우 소용돌이 속에서 시련을 겪었고, 이 시련 속에서 시행착오도 많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바로 주님께서는 극심한 풍랑 속에서 직접 나서서 노를 젓지 않고, 우리에게 노를 저으라고 맡기고서, 힘도 없는 사람들에게 노를 저으라고 맡기고서 주무시고 계신 것입니다. 80년대 즉 창립 40주년을 맞이하게 되면서 교회를 새로 짓게 되었습니다. 이 교회는 당시 제가 생각한 것을 김수근씨가 설계로 구현했습니다만, 강단은 다른 교회와 비교해 지극히 낮게 하고 그리고 예배실 전면에는 대형 십자가를 세웠습니다. 이 십자가가 위쪽은 하늘로 난 창이 뚫려 있어서 하늘의 빛을 받도록 했습니다. 예배실에 들어오면 십자가밖에 안 보입니다. 이 교회의 스탠드글라스는 예배를 마치고 돌아서 나가는 출구 한 곳 밖에 없습니다. 저 스탠드글라스에는 여러 개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들어와서 예배드릴 적에는 이 한 개의 십자가를 향해 예배드리지만, 끝나고 돌아서서 이 예배당을 나갈 때에는 각 사람이 작은 십자가를 메고 나갑니다. 그것이 바로 이 교회를 지을 때의 신학적 의미였습니다. 40주년 때에 우리가 한 것 중에 교회 기를 만든 일이 있습니다. 한번 우리 교회 기를 자세히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저 기를 만들 당시에 우리나라의 교회는 당시 제가 말한 대로 세 파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최근에 어떤 사람이 나에 대해 책을 쓴 것을 읽어보았는데 거기에, 그 당시에 강원용 목사라는 사람은 한국교회가 성부파, 성자파, 성령파로 나뉘었다면서 삼위일체 신학을 내세웠다고 썼습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에는 하늘에 계신 성부 하나님을 밤낮 부르짖는 보수적인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늘만 바라보는 거예요. 또 한쪽으로는, 주로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 편에 서서 그들을 위해 싸우다가 정치범으로 십자가에 죽은 바로 그 성자 예수만을 믿고 항상 이것을 외치던, 특히 70년대, 80년대의 운동권 세력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쪽으로는 성령, 성령, 성령을 부르짖는 기복적인 성장파 교회들이 있습니다. 이 셋으로 대개 나뉘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 분열 속에서 우리 교회가, 내가 부르짖은 것은 무엇보다도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었습니다. 수원 ?내일을 여는 집에서 우리 교회 제직들이 모여서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교회가 지향할 신학은 무엇인가를 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굳게 지키고 나가자고 결의했습니다. 이러한 것이 우리 40주년 당시에 형상화되었습니다. 이런 항해를 계속하다가 5년 전 50주년을 맞이했을 때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60년, 70년대의 그 구호를 부르짖을 수가 없는 새로운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것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선택의 문제였습니다. 온 세상의 생명이 죽어가는 이 세상 속에서 과연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인간만을 구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었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되어서, 50주년 바로 그때에 낮예배 설교에서 저는 “만물의 근원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우주적 그리스도”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 우주의, 전 지구의 생명이 바로 우리가 사랑해야 되는 대상이라고 했고, 그날 밤에 이강백 집사가 만든 그 연극은 노아 홍수 시대를 배경으로 해서 생태계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55주년을 맞이하는 때는 21세기에 들어가는 때입니다. 바로 이때에 우리는 과거를 회상하고 그때 자리에 머물러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 우리가 선교하는 이 세상이 아주 놀랍게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오늘 읽은 로마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제국 말기, 역사의 큰 전환점에 로마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이 편지에서 바울은 “여러분 지금이 어느 때인지 알아야 합니다. 지금은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것이 21세기를 맞이하는 우리, 55주년을 맞이하는 우리 교회 교우들에게 오늘 주어진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우리 주변의 환경이 40년대, 50년대, 60년대와 많은 측면에서 달라집니다만, 크게 달라진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세워지던 그 해는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분단된 해였습니다. 55주년을 맞이하는 오늘은 이 분단을 넘어서 평화와 공존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는 그러한 역사적 환경을 맞고 있습니다. 진정 오늘의 이 상황 속에서 우리가 해야 할 말이 뭐냐! 에베소서 2장 14절에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이 누구냐. 예수님은 막힌 담을 허물러 세상에 오신 분, 갈라진 둘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 십자가르 지신 분이다” 하는 것입니다. 55주년을 맞이하는 우리 경동교회가 전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북 간의 열려진 이 평화가 성공하지 못하면, 우리 한반도는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이 한반도의 평화는 한반도의 평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직결되는 것입니다. 동북아시아의 평화는 세계평화와 직결됩니다. 21세기가 정말 평화로운 세상이 되느냐, 전쟁으로 끝나는 세상이 되느냐 하는 것은 한반도의 평화가 성취되느냐 안 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바로 어제, 그제 2, 3일 동안 텔레비전을 보면서, 이산가족들의 눈물을 보면서 우리도 함께 울었습니다. 이 세상에, 이 지구 위의 과거 역사 속에 같은 형제자매가, 같은 부모자식이 한 땅에 살면서 55년 동안 얼굴 한번 못보고 지내냐 하는 데가 있단 말입니까? 지금도 겨우 만나봐야 겨우 이틀 동안 울면서 만나고 울면서 헤어지는 그런 나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러한 비극이 이제는 끝나야 합니다. 이 비극이 끝나게 하는 일이 바로 오늘, 55주년을 맞이하고 있는 우리의 역사적인 과제인 것입니다. 이러한 자각 속에서 저는 우리 박종화 목사와 함께 이 평화운동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을 하면 할수록 저는 옛날에 골리앗 장군 앞에 섰던 소년 다윗보다도 더 약한 것을 느낍니다. 소년 다윗은 돌팔매라도 있었습니다. 그 돌팔매마저도 내 손에 과연 있는지를 알 수 없는 이런 상황이지만, 그래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기도와 협력으로 이 일을 함께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이 컴퓨터 시대, 인터넷 시대, 이런 첨단과학 시대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놀라운 변화, 이것을 보지 못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말하는 것은 제가 과학을 잘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결국에 불완전하겠습니다만, 이책 저책 읽어보는 중에 최근에 레풀즈 베일이라는 사람의 아직 발표하지 않은 책 원고를 소개한 글을 읽었습니다. 제목이 “영적 기계의 시대” The Age of Spiritual Machine입니다. 이분은 우리가 살아온 20세기가 N, B, C에 의해서 망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 NBC의 N은 핵이요, B는 생물학이요, C는 화학입니다. 이러한 핵무기와 생물학적 무기와 화학적 무기에 의해서 전 인류가 몰살당할 수 있는 이 위기를 해결하지 못한 채로 이류는 21세기로 넘어가는데, 이 21세기를 이 사람은 GNR 기술시대란 말로 표현했습니다. G는 유전공학, N은 나노, R은 로봇의 첫 글자입니다. 이러한 GNR의 시대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세계이며, 얼마나 놀랍게 변하는 세계인지를 이분은 길게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거기에서 특별히 눈길을 끄는 것은 2030년경이 되면 로봇이 사람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거꾸로 사람을 움직이는 로봇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Spiritual Machine 곧 영적 기계로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모든 능력을 훨씬 뛰어넘어서 이제는 사람을 조종하는 그런 기계인간이 태어날 것인데, 더 무서운 것은 이 기계인간은 그 번식이 굉장히 빨라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의 파괴력은 핵무기나 생화학무기와는 비교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인간과는 전혀 다른 인간이 나타나는 세계입니다. 그러면 이렇듯 무서운 세계를 앞에다 둔 우리가 사는 길은 무어냐? 딱 한 가지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것은 모든 과학의 발전을 포기해 버리는 것입니다. “포기하는 길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포기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저는 그 이야기를 할 능력이 없습니다. 다만 제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무서운 시대에 우리가 살고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20세기의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우리 앞에 오는 새 세계라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얼마나 다른 세계라는 것을 깨닫고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잠에서 깨어난 우리들에게 특별한 해답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오늘 우리가 바로 여기 십자가 아래에 있는 이 어둠 속의 촛불 한 대를 바라봅니다. 어둠 속에 딱 한대의 촛불이 켜져 있는 이것이 대림절 첫주일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어둠 속에서 하나의 촛불을 보면서 이 땅에 말구유에 태어난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것입니다. 무서운 파도 가운데서 우리 배가 타이타닉호처럼 바다로 빠져들어가는데, 이 배 속에 주무시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목하는 것입니다. 포기하는 길 외에 아무 가능성이 없으나 포기할 수 없는 이 역사적 기가막힌 현실 속에서 우리는 그분을 바라봅니다. 그분을 통하여 이 역사를 구원할 수 있는 창조적인 소수자들이, 창조적인 과학자들이 나타날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쨌던 오늘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이러한 로보트가 사람이 하는 짓을 다 하면서 나쁜 짓을 할 것이라는 점보다, 하기야 그것들이 2030년대에 나타난다고 하니까, 제가 죽은 다음이니까, 저는 별로 걱정할 것은 없습니다만, 오히려 문제는 사람은 사람인데 사람이 아닌 사람들이 잔뜩 사는 세계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뭐가 인간입니까. 인간이 가져야할 가장 기본적인 것은 다 버린 기계인간들이 지금 이 서울 거리에, 국회의사당에 가득 차 있습니다. 지금 이렇게 경제사정이 나빠져가고 사람들이 죽어간다고 난리인데, 그 사태를 질책하느라고 고함을 지르는 사람들이, 국회의원 들이, 그래 자기들의 월급을 13.4%나 올리고도 뻔뻔스럽게 나서서 자기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하는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입니다. 이건 기계인간들이지 영혼을 가진 인간들이 아닙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무서운 범죄들이 계속되는 속에서 우리는 지금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 우리가 탄 이 무서운 배 속에서 버려진 듯이 보입니다. 왜 우리를 이렇게 버려두느냐 하는 생각이 들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버려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주님은 우리에게 역사를 맡기고 주무시고 계시지만, 우리에게 아주 맡긴 것은 아닙니다. 그분은 이제 깨어나십니다. 깨어나서 날뛰는 이 바다를 향하여 소리쳐서 잔잔하게 해주십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믿는 신앙입니다. 우리의 항해는 오늘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항해는 계속될 것입니다. 이 주님을 모시고. 어디를 향하느냐? 마지막에 도착할 항구가 어디냐? 그것은 새하늘과 새땅,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새로 지은 새하늘과 새땅입니다. 그 항구를 향하여서 우리는 계속해서 항해할 것입니다. 그곳에 도착하는 때 하나님 앞에서 큰 잔치가 벌어질 것입니다. 그 하늘나라의 큰 잔치를 우리는 항해 도중 이곳에서 미리 맛보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나누는 이 성찬상입니다. 우리는 이 성찬상에서 그 맛을 미리 보면서, 도착할 항구를 향하여서 주님을 모시고, 이 시간과 공간 안에 어떤 사건이 생기든지 그것을 넘어서 항해를 계속할 것입니다. 이 경동교회란 배를 맨처음에 예배로 인도하던 나 자신은 그때 스물 여덟 살이었습니다만, 이제 오래지 않아서 여러분의 눈앞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저보다 젊지만 여러분들도 하나하나 다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또 새로운 사람들이 올 것입니다. 그러나 삶과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서 우리 모두를, 산 자와 죽은 자를 함께 자기의 지체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시간에 55년 전 이 자리에서 함께 예배드리던 사람들 가운데 우리 곁을 떠난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그 분들은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은 지금 우리와 함께 이 자리에서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경동교회의 배를 함께 타고 있는 것입니다. 삶과 죽음을 넘어서 우리 가운데 계신 주님의 한 지체들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에 도착할 항구를 향해서 꾸준히 나가면서, 그 주님을 모신 증거로 주님의 살과 피를 나눠 먹는 이 성만찬을 행하는 우리들은 항상 잠에서 깨어나서 주위를 살펴야 합니다. 잠에서 깨어난 우리가 할 일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영혼이란 뭡니까. 인간이란 뭡니까. 사람이 할 일을 사람보다 훨씬 더 잘하는 기계인간이 나옵니다. 그렇지만 사랑은 여전히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모습으로 태어난 우리 인간입니다. 우리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한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정말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삶의 문이 닫히는 시간까지 사랑하며 살아가는 그러한 삶을, 주님을 모시고 계속하시기 바랍니다. .......<<完>>.............. 아래를 클릭 하시면... → 다른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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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인터넷로고스선교회
글쓴이 : David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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