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창조의 구속사적 조명 Ⅰ
본문:(창1:3-2:3)
주요내용:기독론
작성자:한성진
자료출처:http://cafe.daum.net/agaser
요 약
천지창조의 기사에서 구속사의 원리를 발견한다. 먼저 빛의 창조에서 빛으로 오신 성육신의 그리스도를, 다음 물과 물로 나누사 궁창을 만드심에서 그의 죽으심을, 뭍이 생기고 식물로 나게 하심에서 그의 부활을, 해와 달과 별들을 지으심에서 그의 승천을, 물고기와 새를 만드시고 복 주심에서 성령을 보내주심을, 동물과 하나님 형상의 인간을 지으심에서 그의 재림을, 그리고 안식하심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을 허락하실 그리스도를 각각 상징한다.
설 명
☆ 구속사로 본 천지창조
첫째날 - 빛이 있으라 (성육신)
둘째날 - 물과 물로 나뉘게 하라 (죽으심)
셋째날 - 땅과 바다와 온갖 식물들 (살으심)
네째날 - 해와 달과 별들 (승천하심)
다섯째날 - 물고기와 새 (성령 강림)
여섯째날 - 육축과 짐승과 사람 (재 림)
마지막 날 - 안식 (새 하늘과 새 땅)
(본문)
3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4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5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 생략-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창1:3-2:3)
(강해)
창세기는 창조 그 자체의 기록으로도 의미가 크지만 또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백성들을 창조하신 새 창조의 원리로서도 그 가치가 큽니다. 기독교 역사 속에서 학자들은 성경을 여러 가지의 방향에서 접근을 시도했었습니다. 거기에는 약 8가지였는데 그것은 삼일론적 방법, 분석적 방법, 언약론적 방법, 기독론적 방법 일명 구속사적인 해석, 왕국 개념으로 보는 법, 인론적인 방법, 혹은 역사적 방법, 그리고 비유적인 방법 등이 있습니다.
설명하자면 삼일론적 방법은 성경을 삼위일체의 사역과 연관시켜 해석하는 것이요, 분석적 방법은 추구하는 주제에 따라 성경을 해석해 나가는 방법이요, 언약론적 방법은 언약적인 관점에서 성경을 보는 것이요, 기독론적 방법은 성경을 그리스도의 구원사로 보고 해석해 나가는 것이요, 왕국 개념에 기초한 방법으로 성경을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보는 방법이요, 인론적인 방법은 성경을 인간론에 기초하여 풀어 가는 해석법이요, 역사적 방법은 역사적 형식으로 된 신학의 체계를 세우는 방법이요, 비유적 해석이란 성경의 사건에서 영적 비유적인 신령한 의미를 찾는 방법입니다. 최근에는 종말론으로 성경 전체를 해석하는 그런 방법도 유행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그런 관점에서 성경을 보면 그런 관점에서 성경이 보여집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떤 것 한 가지로 전체를 획일적으로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본문이 여러 가지의 관점에서 다양하게 해석되는 것을 부인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영적 비유 관점에서 성경을 보아도 성경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의 귀한 진리를 말씀해 줍니다.
우리는 먼저 창조의 순서에서 그리스도의 구속사를 봅니다.
첫째 날 하나님께서는 빛을 만드셨습니다.
3-5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 이는 첫째 날이니라" 하셨습니다.
이 빛은 4일째 창조한 태양과는 구별된 우주에 던져주신 어떤 빛이라고 봅니다. 이처럼 천지만물 창조의 서곡은 빛으로 시작됩니다. 이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영적 창조를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그 죄악으로 어두운 세상에 먼저 빛 되신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탄생입니다. 이 아기 예수 탄생이야말로 얼마나 하나님 아버지와 온 하늘과 온 땅의 기쁨이었습니까? 참으로 보시기에 좋으셨습니다.
요1:9-10에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했습니다. 마4:15-1에도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속사의 시작은 바로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입니다. 이 예수님을 아는 빛이 우리 심령에도 비춰져야 합니다. 고후4:6에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이 예수를 앎은 각인 영적 삶의 시작입니다.
둘째 날 하나님께서는 궁창을 만드셨습니다.
6-8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하셨습니다.
여기 물을 상하 둘로 나눈 것이 궁창임을 알 수 있습니다. 궁창이란 하늘을 일컫는 말로 '발로 밟다' '넓게 펴다' 라는 '라카'에서 유래한 명사로 '두들겨 넓게 펼친 판'이란 뜻입니다. 우리는 이 궁창에서 윗물을 떠 받치고 있다는 히브리인들의 하늘 관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물이 갈라지면서 시원스럽게 하늘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 둘째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보여줍니다. 즉 예수님께서 발로 밟히고 두들겨 맞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사 하늘의 문을 활짝 열으셨습니다. 이것을 극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바로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가로 막힌 휘장이 갈라지는 기적입니다. 마27:50-51에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사건을 영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면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히10:19-20) 했습니다.
그러니까 둘째 날에 물을 상하로 가르사 궁창을 만드셨듯 영(神)육의 분리 즉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막힌 담을 헐으사 영계의 하늘을 여셨습니다. 둘째 날에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씀이 나오지 않은 이유가 구속사적 관점에서 이해할 때 아들의 죽으심에 대한 아버지의 슬픔을 예표한 것이었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 죽으심은 탄생에 이어 구속사적으로 중대한 사건입니다. 이렇게 하시므로 하늘의 문을 여시고 인류의 죄악을 담당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셋째 날 하나님께서는 바다와 육지를 만드셨습니다.
9-11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 " 했습니다.
이 셋째 날은 바다 속에서 육지가 드러난 날이요 그 육지에 온갖 아름다운 식물들이 나타난 날입니다. 수장되었던 육지가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니까 아름다운 신대륙입니다. 후에 노아 홍수가 있었으므로 단언할 수 없지만 아마도 오늘날과 같이 오대양과 육대주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땅에 풀들과 채소와 과목이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셋째 날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좋은 그림입니다. 수장된 육지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드러난 육지는 죽음에서 부활을, 육지는 흙인 몸을, 그리고 그 육지에 각종 식물들은 부활 생명의 충만함을 각각 예표해줍니다. 오대양과 육대주는 후에 나타난 지구의 형태임이 분명하지만 상징적인 면에서 인간 신체의 구조와도 흡사한 면이 있어 흥미롭습니다. 이렇듯 예수님께서는 영원히 죽지 않을 육체로 부활하셨습니다. 이 부활은 그리스도의 승리요 그에게 붙은 모든 택한 백성들의 승리요 삶입니다(롬6:5).
넷째 날 하나님께서는 궁창에 일월성신을 창조하셨습니다.
14-19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또 그 광명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에 비취게 하시며 주야를 주관하게 하시며 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네째 날이니라" 했습니다.
여기 큰 광명은 태양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작은 광명은 달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둘로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때부터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여기 '주관하다'는 의미는 '지배하다' '다스리다' 관할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럼 궁창 높은 곳에서 주관하시는 권세는 무엇을 예표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나타난 것을 보니까 이 궁창 위에 여호와의 보좌가 나타남을 알 수 있습니다. 출24:9-10에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인이 올라가서 이스라엘 하나님을 보니 그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 같이 청명하더라" 했습니다.
겔1:26-28에도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서부터 음성이 나더라 그 생물이 설 때에 그 날개를 드리우더라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 그 모양이 남보석 같고 그 보좌의 형상 위에 한 형상이 있어 사람의 모양 같더라 내가 본즉 그 허리 이상의 모양은 단 쇠 같아서 그 속과 주위가 불같고 그 허리 이하의 모양도 불같아서 사면으로 광채가 나며 그 사면 광채의 모양은 비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 내가 보고 곧 엎드리어 그 말씀하시는 자의 음성을 들으니라" 하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즉 궁창 위의 다스리는 권세를 가진 태양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승천하사 의의 태양으로서 오늘도 의인과 악인을 다스리시며 죄악을 소멸하시고 사단을 지배하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태양만이 지배하는 권세가 아니라 달에게도 어둠을 지배하는 권세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달을 교회(계12:1) 혹은 성도의 상징으로 봅니다. 달은 태양의 빛을 받아 어두운 세상을 밝힙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는 성도의 축복을 암시합니다. 그래서 딤후2:11-12에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하셨습니다.
다섯째 날 하나님께서는 새와 고기를 창조하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창1:20-23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어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다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했습니다.
이 부분을 저는 성령강림의 예표로 봅니다. 구속사적인 순서는 그리스도의 탄생 죽으심 부활 승천 그리고 성령을 보내주심입니다. 그리고 장차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을 것이고 그 후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신천신지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여기 하늘의 새와 바다의 고기들은 은사충만과 생명충만이라는 두 종류의 성령충만을 잘 예표해 줍니다. 우리는 하늘을 치솟는 새와 같은 능력을 누려야 합니다. 이것이 은사충만입니다. 사40:27-31에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하셨습니다. 이 능력을 받으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강물과 같은 생명적인 은총을 우리에게 부어주십니다.
여섯째 날에 하나님께서는 육축과 사람을 지으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24-26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육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여기 육축과 기는 것과 짐승들은 본능의 상징입니다. 이런 모든 생물들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의 다스림을 받습니다. 바로 그럴 날이 우리 앞에 오게 될 것입니다. 이 구원의 완성의 날이 재림의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고 살아 있는 성도들은 다시 죽지 않을 영광의 형체로 변케 됩니다. 그 때의 신체는 영화롭게 된 몸이기에 본능까지도 온전히 하나님 앞에 순복하는 완전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는 안식하셨습니다.
2:2-3절에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이 부분은 천년왕국 혹은 신천신지 영원천국에서의 안식된 삶의 예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년설의 주장에 따라 천년왕국이 놓여지는 위치가 다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완전한 안식의 세계가 온다는 것입니다. 이 때가 바로 구속사의 완성과 아울러 그것을 누리는 시기입니다.
<결론>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새 창조를 위해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새 창조의 원리가 어쩌면 천지 창조와 그토록 흡사합니까? 우리는 천지 창조에서 그리스도의 새 창조의 사역을 발견했습니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그를 믿어 새 창조를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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