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돔에서 구원 (창19:12-29)
(요약)
천사의 도움으로 소돔에서 구출된 롯과 그 가족을 통해서
세상에서 구원함을 받는 진리를 보여준다.
세상에서 구원함에는 몇 가지 원리가 있으니
먼저는 주님께 속하지 않는 것은 그 어떤 것도 다 처리된다는 점이다.
이 죄악의 처리는 기도 없이는 불가능하며,
이미 이루신 복음에 견고히 서야 하고,
이 거룩함을 위해서 하나님의 강력한 성화의 도구인 징계하심이 존재하며,
세상에 미련 두면 죽는다는 자각이 필요하고,
불완전한 자신에게 긍휼함도 존재함을 기억하여 용기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강해)
이 시간에는 “소돔에서의 구원”이라는 제목입니다. 이 소돔에서의 구원은 영적으로 보면 바로 세상 죄악에서 구원을 받는 법입니다. 그 증거로 예수님께서 눅17:32에 “롯의 처를 생각하라” 경고하심을 들 수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 성도들이 세속에 빠져 있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심이십니다.
이 세상에서의 구원에는 몇 가지의 원칙이 있습니다.
1. 주님께 속하지 않은 것은 처리하십니다.
12절에 “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내라”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서 주님의 생명에 속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그럴싸하더라도 다 처리되어야 합니다. 고전3:12-13에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했습니다.
우리 인간의 선, 인간의 의, 인간의 자랑스러운 것, 인간에게서 나온 그 어떤 좋은 것이라도 그것이 주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면 처리의 대상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이렇게 선한데, 혹은 나는 신앙생활에 열심인데 왜 하나님께서 나를 처리하려 하시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주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닌 내 의 내 선 내 종교성에서 나온 것이라면 처리되어야 합니다.
2. 성령의 탄식하심을 소멸하지 말아야 합니다.
13절에 “그들에 대하여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우리로 이 곳을 멸하러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 했습니다.
이것이 소돔성을 멸하신 제 2차적인 이유입니다. 제 1차적 이유는 소돔인들의 죄악이고 제 2차는 소돔성의 죄악의 원성이 여호와의 귀에 들림입니다. 신령한 의미로 본다면 성도의 마음이 세속이 침투하면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탄식하십니다. 우리는 이 탄식하심을 소멸해선 안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령과 더불어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기도해야 합니다. 최소한 내 신앙이 지켜질 만큼은 영적생활을 해야 합니다. 마틴 루터는 ‘나에게 하루 세 시간의 기도가 없다면 그 날의 승리는 마귀에게로 돌아가리라“ 했습니다. 제 생각인데 평온할 때는 최소한 엎드려 1시간, 시험이 있거나 주의 일을 하려면 2-3시간의 기도생활이 꼭 필요합니다.
3. 복음의 말씀에 견고히 서야 합니다.
14절에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더라” 했습니다.
목숨을 건질 귀한 복음을 전했으나 롯의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이처럼 성도들도 형태는 다르나 복음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현실이나 상태나 체험보다 성경 진리를 더 믿어야 합니다. 나는 경건치 않을지라도 성경이 의인이라 하시니 의인인줄 믿고, 나는 실패로 가득해도 성경이 우리를 주 안에서 영광스럽게 했다고 하시니 그렇게 믿어야 합니다. 복음이 농담처럼 여겨진다면 큰 문제입니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롬4:5에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하셨습니다. 또 롬1:17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복음을 모르면 안돼요. 복음을 알아도 믿지 않으면 안돼요. 예수 보혈로 용서 받았다고 귀가 닳도록 들었지만 실재 보혈을 믿고 양심을 안돈시키지 않으면 허사예요. 그리고 성경에 우리에게 세상과 율법과 죄에 대해서 죽었다고 하면 죽은 줄 아세요. 예수 안에서 그것과 상관이 없게 된 것을 믿고 이젠 스스로 이기려고 하지 마세요. 대신 감사하는 생활하시고 하나님 경외하는 생활하세요. 왜 복음의 말씀들을 롯의 사위들처럼 농담으로 여기고 마음에 두지 않고 생활화하지 못한지 모르겠어요.
4. 성령의 은사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16절에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인자를 더하심이었더라”
롯이 지체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소돔성에 있는 재물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 가족들을 다 데리고 나오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롯과 그 아내와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해서 성밖에 둡니다.
이처럼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여러 가지 이유로 세상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벗어나도록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이 있습니다. 그것이 각종 은사입니다. 그 은사에는 교회를 통해서 도우시는 직분적 은사가 있고, 또 그 은사에는 성령의 9가지의 신령한 은사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강권하시는 사랑이 있으니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이 징계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예토록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강력한 방법입니다. 이 강한 손에 붙잡히면 죄악에서 회개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두 다 우리 성도들을 온전케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생활 뿐 아니라 교회생활도 잘해야 합니다.
5. 세상 것에 미련 두면 죽는다는 자각이 있어야 합니다.
17절에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거나 하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그러나 26절에 안타깝게도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본 고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했습니다. 우리 심령도 세상에 미련 두면 롯의 아내처럼 굳어버립니다. 그토록 복되고 활발하던 신령이 세상 사랑하는 순간 굳어버립니다. 돌멩이도 그런 돌멩이가 없어요. 돌맹이는 함마로 깨지만 콱콱 막혀 굳어버린 심령은 은혜가 아니고는 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소돔이 건설된 평지인 들판에 머물면 안 되요. 소돔을 떠난다고 성문만 나섰지 아직도 세상에 미련두고 있다면 소돔과 함께 심판받습니다. 확실히 피해야 해요. 아직도 피난처 산 되신 하나님께 온전히 피하지 못했다면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6. 그래도 우리 인간은 연약하기에 긍휼이 필요합니다.
18-22절에 “롯이 그들에게 이르되 - 내가 도망하여 산까지 갈 수 없나이다 두렵건대 재앙을 만나 죽을까 하나이다 보소서 저 성은 도망하기 가깝고 작기도 하오니 나로 그 곳에 도망하게 하소서 - 그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에도 네 소원을 들었은즉 너의 말하는 성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그리로 속히 도망하라 - 그러므로 그 성 이름을 소알이라 불렀더라“
이렇게 여호와께서는 연약한 롯을 위해서 소알성을 허락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멸하신 성은 소돔과 고모라 말고도 베라 아드마 스보임(신29:23, 호11:8)입니다. 그런데 그 멸망의 대상 중에 소알성도 포함되었는데 롯의 간청으로 멸하시지 않고 거기 피하도록 하십니다. 소알이란 “작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 해도 우리 연약 때문에 죄악스런 면들이 많아요. 그 중에 무식도 있어요. 완전하지 못한 것도 있어요. 참고사항이지만 누가 천국에 가서 보니 “저 여자 예쁘다”라고만 생각해도 죄라고 하더랍니다. 그렇다면 거기 안 걸릴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마땅치는 않지만 긍휼로서 용납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멸망해야 하나 긍휼로서 용납하시는 작은 소알이예요. 우리가 죄에 둔해서도 안 되지만 너무 예민해서 지나친 정죄는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멀어지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 사랑하면 영혼에 고통이 옵니다. 심판의 불이 떨어집니다. 그리고 세상 사랑하면 심령이 소금기둥이 됩니다. 그러므로 진실로 회개하여 이제는 복음을 믿고 기도하고 은사의 도움을 받아 세상 것에 미련 두지 말고 주님을 더욱 사랑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요약)
천사의 도움으로 소돔에서 구출된 롯과 그 가족을 통해서
세상에서 구원함을 받는 진리를 보여준다.
세상에서 구원함에는 몇 가지 원리가 있으니
먼저는 주님께 속하지 않는 것은 그 어떤 것도 다 처리된다는 점이다.
이 죄악의 처리는 기도 없이는 불가능하며,
이미 이루신 복음에 견고히 서야 하고,
이 거룩함을 위해서 하나님의 강력한 성화의 도구인 징계하심이 존재하며,
세상에 미련 두면 죽는다는 자각이 필요하고,
불완전한 자신에게 긍휼함도 존재함을 기억하여 용기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강해)
이 시간에는 “소돔에서의 구원”이라는 제목입니다. 이 소돔에서의 구원은 영적으로 보면 바로 세상 죄악에서 구원을 받는 법입니다. 그 증거로 예수님께서 눅17:32에 “롯의 처를 생각하라” 경고하심을 들 수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 성도들이 세속에 빠져 있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심이십니다.
이 세상에서의 구원에는 몇 가지의 원칙이 있습니다.
1. 주님께 속하지 않은 것은 처리하십니다.
12절에 “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내라”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서 주님의 생명에 속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그럴싸하더라도 다 처리되어야 합니다. 고전3:12-13에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했습니다.
우리 인간의 선, 인간의 의, 인간의 자랑스러운 것, 인간에게서 나온 그 어떤 좋은 것이라도 그것이 주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면 처리의 대상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이렇게 선한데, 혹은 나는 신앙생활에 열심인데 왜 하나님께서 나를 처리하려 하시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주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닌 내 의 내 선 내 종교성에서 나온 것이라면 처리되어야 합니다.
2. 성령의 탄식하심을 소멸하지 말아야 합니다.
13절에 “그들에 대하여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우리로 이 곳을 멸하러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 했습니다.
이것이 소돔성을 멸하신 제 2차적인 이유입니다. 제 1차적 이유는 소돔인들의 죄악이고 제 2차는 소돔성의 죄악의 원성이 여호와의 귀에 들림입니다. 신령한 의미로 본다면 성도의 마음이 세속이 침투하면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탄식하십니다. 우리는 이 탄식하심을 소멸해선 안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령과 더불어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기도해야 합니다. 최소한 내 신앙이 지켜질 만큼은 영적생활을 해야 합니다. 마틴 루터는 ‘나에게 하루 세 시간의 기도가 없다면 그 날의 승리는 마귀에게로 돌아가리라“ 했습니다. 제 생각인데 평온할 때는 최소한 엎드려 1시간, 시험이 있거나 주의 일을 하려면 2-3시간의 기도생활이 꼭 필요합니다.
3. 복음의 말씀에 견고히 서야 합니다.
14절에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더라” 했습니다.
목숨을 건질 귀한 복음을 전했으나 롯의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이처럼 성도들도 형태는 다르나 복음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현실이나 상태나 체험보다 성경 진리를 더 믿어야 합니다. 나는 경건치 않을지라도 성경이 의인이라 하시니 의인인줄 믿고, 나는 실패로 가득해도 성경이 우리를 주 안에서 영광스럽게 했다고 하시니 그렇게 믿어야 합니다. 복음이 농담처럼 여겨진다면 큰 문제입니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롬4:5에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하셨습니다. 또 롬1:17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복음을 모르면 안돼요. 복음을 알아도 믿지 않으면 안돼요. 예수 보혈로 용서 받았다고 귀가 닳도록 들었지만 실재 보혈을 믿고 양심을 안돈시키지 않으면 허사예요. 그리고 성경에 우리에게 세상과 율법과 죄에 대해서 죽었다고 하면 죽은 줄 아세요. 예수 안에서 그것과 상관이 없게 된 것을 믿고 이젠 스스로 이기려고 하지 마세요. 대신 감사하는 생활하시고 하나님 경외하는 생활하세요. 왜 복음의 말씀들을 롯의 사위들처럼 농담으로 여기고 마음에 두지 않고 생활화하지 못한지 모르겠어요.
4. 성령의 은사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16절에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인자를 더하심이었더라”
롯이 지체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소돔성에 있는 재물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 가족들을 다 데리고 나오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롯과 그 아내와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해서 성밖에 둡니다.
이처럼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여러 가지 이유로 세상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벗어나도록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이 있습니다. 그것이 각종 은사입니다. 그 은사에는 교회를 통해서 도우시는 직분적 은사가 있고, 또 그 은사에는 성령의 9가지의 신령한 은사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강권하시는 사랑이 있으니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이 징계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예토록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강력한 방법입니다. 이 강한 손에 붙잡히면 죄악에서 회개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두 다 우리 성도들을 온전케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생활 뿐 아니라 교회생활도 잘해야 합니다.
5. 세상 것에 미련 두면 죽는다는 자각이 있어야 합니다.
17절에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거나 하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그러나 26절에 안타깝게도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본 고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했습니다. 우리 심령도 세상에 미련 두면 롯의 아내처럼 굳어버립니다. 그토록 복되고 활발하던 신령이 세상 사랑하는 순간 굳어버립니다. 돌멩이도 그런 돌멩이가 없어요. 돌맹이는 함마로 깨지만 콱콱 막혀 굳어버린 심령은 은혜가 아니고는 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소돔이 건설된 평지인 들판에 머물면 안 되요. 소돔을 떠난다고 성문만 나섰지 아직도 세상에 미련두고 있다면 소돔과 함께 심판받습니다. 확실히 피해야 해요. 아직도 피난처 산 되신 하나님께 온전히 피하지 못했다면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6. 그래도 우리 인간은 연약하기에 긍휼이 필요합니다.
18-22절에 “롯이 그들에게 이르되 - 내가 도망하여 산까지 갈 수 없나이다 두렵건대 재앙을 만나 죽을까 하나이다 보소서 저 성은 도망하기 가깝고 작기도 하오니 나로 그 곳에 도망하게 하소서 - 그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에도 네 소원을 들었은즉 너의 말하는 성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그리로 속히 도망하라 - 그러므로 그 성 이름을 소알이라 불렀더라“
이렇게 여호와께서는 연약한 롯을 위해서 소알성을 허락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멸하신 성은 소돔과 고모라 말고도 베라 아드마 스보임(신29:23, 호11:8)입니다. 그런데 그 멸망의 대상 중에 소알성도 포함되었는데 롯의 간청으로 멸하시지 않고 거기 피하도록 하십니다. 소알이란 “작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 해도 우리 연약 때문에 죄악스런 면들이 많아요. 그 중에 무식도 있어요. 완전하지 못한 것도 있어요. 참고사항이지만 누가 천국에 가서 보니 “저 여자 예쁘다”라고만 생각해도 죄라고 하더랍니다. 그렇다면 거기 안 걸릴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마땅치는 않지만 긍휼로서 용납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멸망해야 하나 긍휼로서 용납하시는 작은 소알이예요. 우리가 죄에 둔해서도 안 되지만 너무 예민해서 지나친 정죄는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멀어지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 사랑하면 영혼에 고통이 옵니다. 심판의 불이 떨어집니다. 그리고 세상 사랑하면 심령이 소금기둥이 됩니다. 그러므로 진실로 회개하여 이제는 복음을 믿고 기도하고 은사의 도움을 받아 세상 것에 미련 두지 말고 주님을 더욱 사랑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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