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나라를 유업으로 못받는 자
글/扈一麥
고전6장 7-11절 여러분이 서로 소송을 한다는 것은 여러분이 벌써 실패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왜 차라리 억울한 일을 당해 주지 못합니까? 왜 차라리 속아 주지 못합니까? 도리어 여러분은 불의를 행하며 속이고 있습니다. 그것도 형제들에게 그런 짓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불의한 사람이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을 알지 못합니까? 속지 마십시오. 음행하는 사람이나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이나 간음하는 사람이나 남창이나 동성연애를 하는 사람이나 도둑이나 탐욕하는 사람이나 술꾼이나 남을 헐뜯는 사람이나 속임수로 남을 해롭게 하는 사람이나 약탈하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도 그런 사람들이 더러 있었으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으로 씻음을 받고 거룩해져서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우리 카페에 글을 올려 놓았더니 댓글을 달면서 님들의 생각대로 성경을 가지고 책망을 하기에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하는 말씀을 가지고 이렇게 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자라고 하시기에 정확한 것인가를 서로 알기를 원합니다. 어떤사 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자일까요? 그것을 알아보기 원합니다. 우리카페는 목회자가 주로 들어 오십니다. 한 부류는 성경을 잘아시는 분들이고, 한 부류는 조금 더 배우셔야하는 분들입니다. 잘 아시는 내용이지만 다시 한번 보신다고 생각하시고 차근 차근 읽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고린도 교회의 불의에 대한 책망
바울은 성도간의 불의한 일로 세상 법정에 송사한 일로 인하여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책망하면서 성도가 세상의 판단을 받는 것이 옳지 않음을 강조하였습니다. 또한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아 거룩함을 입은 존재로서 음행을 행하는 것이 합당치 않음을 밝히면서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을 명하였습니다. 바울은 교만한 자들의 권세를 다루며 권면합니다. 즉 고린도전서 5,6장에서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현재 영적으로 완전하다는 것에 도취하지 말고 현재 삶 속에서 거룩한 공동체를 이루는 능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는 이러한 삶을 살지 못하였기에 바울은 본서를 통해 교회의 질서를 파괴하는 음행하는 일과 믿지 않는 자들 앞에 송사를 가져가는 부끄러운 성도들을 향한 잘못을 꾸짖고 있습니다.
1. 형제를 송사한 고린도 교회
바울은 교회에서 세상 법정에 송사한 일을 책망하였습니다. 그들은 교회 안에서 일어난 일을 교회 안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세상 법정에 가져가 판단을 구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범죄를 저질렀던 것입니다. 성도가 형제를 송사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인데 하물며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송사하는 것이 잘못되었음을 강조하였습니다. 성도끼리 송사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과 속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간의 관계가 갖는 특수성을 가리킨 것입니다. 성도 간에는 서로 사랑하고 진실을 행하여야 합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의 거룩한 교제의 합당한 모습인 것입니다.
◆ 세상 법정에서 성도의 고소건
본문은 교회 안의 그릇된 일을 불의한 외부인들 앞에서 판단받게 함을 책망하고 교회 안에서의 성도의 판단하는 권세 사용을 권면하는 내용입니다. ①성도의 판단하는 권세는 어디까지 해당하는가? ②성도는 현재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윤리적 삶이 없이도 미래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는가? 교회가 교회 안의 문제를 불의한 외부인들 앞에 송사하는 것은 성도가 세상을 판단하고 천사까지 판단할 것을 알지 못하는 무지에서 나온 수치스런 처사 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아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믿지 않는 자들 앞에서 수치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고린도 교회의 수치는 소송에 의해서 해결될 수 없는 사건이 고린도 교인들 사이에 있었다는 것은 그들이 영적으로 실패한 삶을 보여 줍니다.
바울은 교인들이 이런 모든 싸움에 휩쓸리기보다는 해를 당하거나 속임을 받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피차 송사하는 성도들은 그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교회를 수치스럽게 하는 행위임을 지적합니다. 성도들은 믿음에 기초하여 비복수적 윤리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만약 고린도 교회처럼 송사나 분쟁이 있을 경우 세상 법정에까지 나아가면 그 교회는 하나님께 향한 정체성을 잃고 스스로 파멸하는 결과까지 초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 교회처럼 행할 경우,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위험을 경고합니다(고전6:8). 이 경고성 명령은 그들이 회심한 자들이라는데 근거한 성도의 윤리 요구인 것입니다. 회심한 자는 세상 것이 아닌 그리스도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몸들이 세상의 법에 의지하여 영적 음란을 취하기 때문입니다.
2. 거룩해야 할 성도의 삶
바울은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함을 강조하면서 고린도 교회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에 대하여 경고하였습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악한 자들의 행위로 인하여 미혹을 받지 말라고 교훈하면서 음란한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 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임을 강조하였습니다. 즉 구원에 동참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본래 모든 자가 부정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가 없는 자들이었으나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죄 씻음을 받아 거룩한 자가 되었음을 강조하였습니다. 이는 성도의 신분이 어떠함을 강조함으로써 성도가 거룩하고 의로운 신분에 합당하게 행하여야 함을 교훈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다시 살려 주셨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은 영광스러운 몸을 가지고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하나님은 주님을 살려주신 것처럼 장차 권능으로 우리의 몸도 다시 살려주실 것입니다. 그때에 우리의 몸은 그리스도의 몸처럼 영광스럽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은 영혼 구원과 깊은 관계가 있으며, 죽은 후에는 사라져 버리는 헛된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바울의 주장은 고린도 교회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었습니다. 고린도교회의 자쥬주의자들은 우리의 몸은 영혼과 아무 관계가 없으며, 죽으면 사라지는 허무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우리의 몸이 영혼과 무관한 것이 아니며, 장차 영광스러운 몸이 되어 영생에 들어갈 영광스러운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3. 음행하는 자들의 죄
성도는 그리스도께서 살리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한 존재로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게 행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성도가 음행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과 그런 행위에 우유부단한 교회의 태도를 지적하는 내용입니다. ①바울은 그런 자에 대하여 어떻게 판단하는가? ②이 땅에서의 교회의 성격은 무엇인가? ③성도가 음행하는 자들과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하는가? 성도의 몸이 교회의 한 부분으로서 거룩한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었으므로 거룩하게 행하여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가 되듯이 창기와 합하는 자는 창기와 한 몸이 됩니다. 즉 성도의 몸은 그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입니다. 성도의 몸이 하나님의 소유임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죄인의 몸을 구속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명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구원을 이루신 목적을 이루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피로 사신 목적은 죄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음행자는 축출되어야 한다.
고전5:1은 음행 자체의 성격을 보여 주고, 고전 5장 2절은 고린도 교회가 음행하는 자에 유연하게 대처한 태도에 대한 바울의 실망을 보여 줍니다. 이는 그동안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한 관대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나 음행한 그들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합니다. 즉 바울은 음행하는 사람을 믿음의 공동체에서 쫓아내야 한다고 네 번이나 명령합니다. 바울은 축출의 방법과 이유를 제시하며, 그리고 유월절 비유를 통해 교회는 이땅에서 순전하고 진실한 공동체로서 유지되어야 한다고 그 축출에 대한 신학적 근거를 제시합니다.
◆헬라인들은 몸을 눈에 보이는 육신
즉, 물질적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진정한 우리의 모습은 영인데, 그 영이 부정한 육신 안에 갇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인간이 육신에 갇혀 있기 때문에 영이 진실을 바로 보지 못하고, 정욕과 죄의 욕심을 따라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인간의 영이 육신으로부터 빠져 나올 때에 진정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인간을 둘로 분리된 존재로 보지 않고 하나의 통합된 존재로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인간의 몸을 인간으로 부르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영혼을 인간으로 부르기도 하며, 또 어떤 때는 혼을 인간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그는 인간은 몸과 영혼, 또는 몸과 혼과 영으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들을 인간 전체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면 몸과 혼과 영은 무엇이 다른가? 바울은 이러한 용어는 상황에 따라서 무엇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사용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음행죄
당시의 헬라 문화권이 대부분 그러했지만 특히 고린도에는 우상의 신전에서 일하는 여사제가 남자들을 상대로 매춘을 하는 것이 보편화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고린도인처럼 행하다' 라는 말이 '매춘 행위를 하다' 라는 의미를 지니게 될 정도였습니다. 문제는 고린도 교인들 중의 일부가 여전히 옛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과 동일하게 창기와 음행하는 죄악을 범한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성도란 예수그리스도와 합하여 영적으로 하나된 자들이란 사실을 상기시켜 주님을 욕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므로 결코 용납될 수 없다는 것(고전6:14-17)과 성도가 자신의 몸을 음행의 도구로 사용한다면 그는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전을 더럽힘으로써 심각한 신성 모독에 빠지게 됨을 경고한 것입니다(고전6:18-20).
◆음행에 빠진 이유
고린도 교인이 음행에 빠진 이유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오해한데 그 원인이 있습니다.(고전6:12,13), 즉 고린도 교인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오해하여 성도란 무슨 일이든 해도 괜찮다는 식의 도덕 폐기론에 빠져 있었습니다. 나아가 헬라의 이원론적 사고에 젖어 있던 그들은 육을 악하고 더러운 것으로 취급하여 어떻게 사용해도 관계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자유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는 죄와 율법에서의 자유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자유를 누리되 그리스도 안에서 지켜야 할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하며, 자신의 거룩한 지체를 쾌락이라는 죄악의 도구에 내어 맡겨서는 안됩니다.
본문은 고린도 교회 가운데 신령한 사람은 창기에게 가서 몸으로 음행을 행할 자유의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다루는 내용입니다. ①죄로부터 자유케 되어 구원받은 사람은 윤리적으로 아무렇게 살아도 죄가 되지 않는가? ②몸이 존재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고린도 교회의 신령하다는 자들은 위와 같이 자유와 몸에 대해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6장12절에서 직접 그들이 기독교의 자유를 오해하고 있음을 반박하고, 고전6장13-14절에서 몸의 본질에 대한 오해도 반박합니다. 몸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존재하고 주는 몸을 위하여 존재합니다. 우리의 몸은 아직 하나님이 부활시키실 때까지 완전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바울은 음행을 통해 영적인 감응력에 치명타를 받을 수 있기에 그리스도인은 음행을 피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4, 몸은 성령의 전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이런 신학적 근거 위에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임을 명시합니다. 즉 몸은 창기와 합하면 저와 한 몸이 되고 주와 합하면 한 영이 됩니다. 바울은 음행할 수 없는 신학적 근거로서 몸이 성령의 전이라고 제시합니다. 그러므로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에 대하여 요셉이 과감하게 물리쳤듯이(창39:12),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임을 늘 인식하고 요셉과 같은 신앙이 필요합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신령하다고 하면서 음행을 행하거나 불신자들 앞에서 형제를 고소하거나 몸으로 음행하는 자유의 권리를 자랑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윤리적으로 부패한 삶이 근본적으로 복음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근거함을 지적합니다. 성령의 은사들을 마치 구원의 증거로 제시하며 윤리적으로 부패한 삶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신비주의자들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이 주신 은사들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용하고 몸으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에 음행의 문제중 아버지의 서모와 음행하는 자는 교회에서 쫓아내라고 강력하게 고린도전서에서 책망하던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그가 잘못을 뉘우쳤으면 형제로 인정하라고 하는 것은 징계를 통하여 바른 그리스도인을 만들기를 원하는 바울과 주님의 마음일 것입니다.
◆ 결론 지으면서....
사도 바울은 교회가 세상과 같은 죄를 짓고 있으면서 그들과 다름없다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자다 라고 책망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권징을 하여서 고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게하라는 것이지 쫓아낼 목적이 아니며, 장성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라면서 책망하는 내용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거룩한 존재가 된 성도는 자기 몸이 거룩한 성전임을 기억하여 항상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좇아 행하여야 합니다. 성전 된 몸으로 음행을 행하여 범죄 하는 것이 다른 모든 죄보다도 더한 것은 다른 죄는 몸 밖에 있으나 음행은 몸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자신의 지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교회의 태도로 돌아가서 고린도인들이 바울이 이 문제에 대하여 이전에 쓴 편지를 오해하고 무시한 것과 연결합니다. 바울이 이전에 쓴 편지의 진의는 음행하는 자들은 교회 안에서 축출해야 하되 교회 밖에서는 전도와 회개의 대상으로 한정하여 사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직접 가서 해결해 주지는 못하지만 성령 안에서 사도적 권위를 행사하던 이전의 편지를 통하여 그들의 문제를 해결합니다.
교회에서의 권징의 대상은 교회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 중 징계받아 마땅한 죄, 곧 교리적으로 복음의 바른 진리를 거스리는 자(행20:28-30 ; 고전15:12-19 ; 딤전1:18,19)와 각종 불의를 범한 자(행5:1-11 ; 고전6:9,10 ; 갈5:19-21)입니다. 그리고 교회에서의 모든 권징은 개인적 권면으로부터 시작하되 범죄자가 그 권면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에 비로소 전 공회의 차원에서 징계를 사용해야 합니다(마18:15-17). 한편 교회는 권징을 엄격히 시행하는 동시에 사랑과 용서의 정신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권징의 목적이 그리스도의 이름이 훼방받지 않게하며 나아가 성도들로 하여금 동일한 죄악에 물들지 않게 하려는 동시에 그 죄인도 회개시켜 하나님의 구원을 온전히 이루려는 것인 이상 그 목적이 달성되었으며 출교받은 자라 할지라도 그가 회개하였을 경우 다시 교회 회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입니다(고후2:5-11).이제 우리는 세상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과 같은 일을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扈ⓗ
관련자료■▶'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는 무슨 의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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