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심산 (신27:11-15)
초점:축복론
요 약
그리심산은 축복의 산으로 복과 관련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이곳에 온 아브라함이 복을 받았다(창12:5-7). 즉 말씀에 순종함이 복받는 길이다. 또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갔다가 회개하여 다시 이곳에 돌아옴으로 다시 복을 받았다(창13:1-4). 즉 회개와 아울러 성화로 나아갈 때 복을 받는다. 이곳은 믿음의 조상 이래 복의 백성들이 대대로 예배했던 곳이었다(요4:19-20). 즉 복은 예배할 때 온다. 그리고 이곳에서 네 종류의 나무 비유가 선포되었다(삿9장). 즉 맡겨주신 일에 충성하는 자가 복을 받는다.
이 시간에는 그리심산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리심산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뗄레야 뗄 수 없이 중요한 산이 그리심산입니다. 예를 들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살았고 그 아들 이삭과 야곱이 살았으며 이곳에서 여호수아가 축복의 말씀을 선포했고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 사마리아 사람들이 이곳에 여호와의 제단을 쌓아 놓고 예배했습니다.
이 산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가르쳐 주는데 그것은 축복의 원리입니다. 아브라함도 여기서 살다가 복을 받았고 이삭도 야곱도 이곳에 살다가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부르실 때는 복받고 살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복을 어떻게 받는 것인지 모른다면 복을 받지 못합니다. 그럼 어떻게 복을 받는 것인지 그리심산에 나타난 복의 비결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떻게 복을 받습니까?
1. 약속의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복을 받습니다.
창12:5-7에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아브람이 그 땅을 통과하여 세겜 땅 모레 상수리 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 중간 지점 하란에 거하다가 다시 떠나라는 여호와의 명령을 받고 순종하여 가나안 땅에 도착한 최초의 장소가 세겜 땅 모레 상수리 나무라고 했는데 이곳이 바로 그리심산 아래인 것입니다. 이렇게 순종하자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축복하셨습니다.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말씀에 순종하자 복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복의 첫 번째 원리입니다.
신28장의 축복장에도 이 말씀과 순종의 원리는 정확하게 나타납니다. 신28:1-6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이라고 했고 반대로 신28:15을 보면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이라고 하여 축복과 저주가 바로 순종의 여부에 달렸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성경에 순종하는 자는 다 복을 받았습니다. 순종의 아브라함의 종착역은 축복이었습니다. 그래서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고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노아도 순종할 때 가족이 구원함을 받았고, 다윗도 순종할 때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순종하기로 굳게 다짐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복의 사람이 되기까지 한 걸음 한 걸음의 순종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한 걸음씩입니다. 성화에는 순서와 과정이 있습니다. 죄악 투성이의 인간에게 무슨 말씀부터 주어야 할 것인가 사람은 모릅니다. 그러나 한 말씀 순종하고 나면 다른 말씀이 주어지고 다른 한 말씀 순종하고 나면 또 다른 말씀이 주어집니다. 이것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설교자를 통해서 전체적인 윤곽을 보여주는 객관적인 말씀을 주시고 또 성령의 은사를 통해서 구체적인 현 단계에 필요한 인도를 받도록하여 주십니다.
마치 광야에서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신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이 때 반드시 해야 할 것이 순종입니다. 그래서 순종하고 순종하다 보면 머지 않아 어느덧 축복의 중심에 와 있게 되는 것입니다.
2.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그리심산은 아브라함이 애굽에서 다시 회개하고 돌아온 장소라는점에서 회개의 상징입니다. 창13:1-4에 "아브람이 애굽에서 나올새 그와 그 아내와 모든 소유며 롯도 함께 하여 남방으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 그가 남방에서부터 발행하여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했습니다.
이 말씀 대로 아브라함이 시험을 견디지 못하고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회개하고 돌아온 곳이 바로 벧엘과 아이 사이 그러니까 그리심산 아래였습니다. 이곳은 성경은 아브라함이 처음 장막을 쳤던 곳이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바로 그리심산입니다. 그리고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는데 이것은 신앙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더욱 큰 복을 주셨습니다.
영적으로 볼 때 애굽은 세상이요 애굽으로 내려감은 타락의 상징이요 애굽에서 온갖 수모를 당하고 돌아옴은 회개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아브라함에게 은금과 육축이 풍부했던 것처럼 죄만 떠나도 하나님께서는 풍성한 복을 주십니다. 돌아온 탕자에게 아버지가 모든 권리를 회복시켜 주심과도 같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그가 애굽에서 돌아오기만 해도 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단순한 예배 개념을 넘어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관계회복을 할 때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더 이상 그 땅이 아브라함과 롯이라는 두 사람을 용납할 수 없을 만큼 큰 복을 주셨습니다. 그 뿐 아니라 창13:14-17을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죄악을 회개하고 나아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성화에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는 무궁한 복락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3. 예배하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요4:19-20에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한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께 그리심산을 가리키며 그런 말을 했습니다. 이처럼 그리심산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예배의 장소요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배한 장소요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단됐을 때 비록 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제사했지마는 북이스라엘의 계속적인 예배의 장소요 바벨론에서 귀환한 후에도 사마리아 사람들의 변함없는 예배의 장소였습니다. 그러므로 축복의 그리심산이 예배와 관계 있다는 것은 예배가 축복의 중요한 요소라는 교훈을 줍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예배자를 만나주시고 예배자의 기도를 들으시며 예배자를 복주십니다. 아브라함이 복을 받은 것도 예배를 잘 드렸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바른 예배를 드린 아벨과 그 제물을 열납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예배를 잘 드릴 때는 언제나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성전에서 제사가 중단될 때 이스라엘에는 언제나 재앙이 왔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공식입니다. 이처럼 우리 심령 속에서도 기도와 예배가 그쳐질 때 영적인 복은 사라집니다. 그 대신 영적 전쟁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심령이 상하거나 죽거나 포로로 잡혀가 죄악의 종노릇을 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역사란 단순한 그 나라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의 영적인 상황을 나타내는 진리요 비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과 교회에 있어서도 예배가 그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의 희망은 예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얼마나 예배를 잘 드리느냐 우리 성도들도 예배 잘드려 복의 주인공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4. 충성된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또 그리심산이 어떤 것으로 유명합니까? 기드온의 아들 요담의 네 종류의 나무의 비유로 유명합니다. 삿9장에 요담의 나무 비유가 있습니다. 가기에 가람나무 무화과 나무 포도나무 가시나무가 나오는데 우리를 위하여 왕이 되라고 하여도 모든 나무들은 자기의 직분을 귀히 여기며 자기의 위치를 결코 버리지 않고 충성했지만 자기 직무를 모르고 요동했던 가시나무는 남도 죽이고 자기도 불이 나와서 타져 죽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성도들이 복을 받으려면 자기에게 주신 일에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작은 일에 충성할 때 큰 것을 맡기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작은 것을 놓치기 때문에 큰 것을 얻지 못합니다. 예언의 사역도 예언이 처음부터 강하게 나타는 경우는 드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기도하고 나면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낌이 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세미한 음성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것은 100% 내 생각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사람들이 방치하는데 방치하지 않고 그 사역을 계속하면서 혼자서 늘 기도하면 더욱 분명하게 나타나게 됩니다.
기도의 사역에 있어서도 그렇게 하십시오. 한 사람씩 위해서 늘 기도하면 나중에는 기도할 때마다 떠오르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느낌을 버리지 마시고 그것을 제목 삼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혹시 내 몸의 일부가 아프다면 그 부분을 안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나중에 알고 보면 신기하게도 그 사람이 거기가 아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혹시 심령이 답답하다면 그것이 풀릴 때까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깨닫게 하시는 일에 늘 충성하면 나중에는 더욱 풍성한 축복을 주셔서 더욱 분명히 알고 기도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설교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하면서 준비할뿐 아니라 강단에서 깨닫게 해 주시는 것에 민감해야 합니다. 강단에 서서 준비된 말씀을 전하지만 사이 사이에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이나 환상들이 꼭 내 생각처럼 자꾸 나타나는 현상이 있게 됩니다. 그런데 그 생각들을 보면 어디에서 왔는지 아주 좋은 생각들입니다. 설교자는 그 때 이 도우심을 무시하지 말고 충성할 때 하나님께서는 더욱 크고 풍성한 것을 주십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봉사하고 싶은 작은 마음이 있다면 그 감동 역시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능력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주실 때는 아주 미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세미한 음성이 있든 없든 일단은 자신이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으로 복을 주십니다.
<결론>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그리심산은 축복의 산입니다. 이 산은 축복만 한 산이 아니라 축복의 원리까지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회개하며 성화를 향해 나가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하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리고 작은 일에 충성된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우리들도 이 귀한 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초점:축복론
요 약
그리심산은 축복의 산으로 복과 관련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이곳에 온 아브라함이 복을 받았다(창12:5-7). 즉 말씀에 순종함이 복받는 길이다. 또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갔다가 회개하여 다시 이곳에 돌아옴으로 다시 복을 받았다(창13:1-4). 즉 회개와 아울러 성화로 나아갈 때 복을 받는다. 이곳은 믿음의 조상 이래 복의 백성들이 대대로 예배했던 곳이었다(요4:19-20). 즉 복은 예배할 때 온다. 그리고 이곳에서 네 종류의 나무 비유가 선포되었다(삿9장). 즉 맡겨주신 일에 충성하는 자가 복을 받는다.
이 시간에는 그리심산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리심산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뗄레야 뗄 수 없이 중요한 산이 그리심산입니다. 예를 들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살았고 그 아들 이삭과 야곱이 살았으며 이곳에서 여호수아가 축복의 말씀을 선포했고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 사마리아 사람들이 이곳에 여호와의 제단을 쌓아 놓고 예배했습니다.
이 산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가르쳐 주는데 그것은 축복의 원리입니다. 아브라함도 여기서 살다가 복을 받았고 이삭도 야곱도 이곳에 살다가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부르실 때는 복받고 살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복을 어떻게 받는 것인지 모른다면 복을 받지 못합니다. 그럼 어떻게 복을 받는 것인지 그리심산에 나타난 복의 비결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떻게 복을 받습니까?
1. 약속의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복을 받습니다.
창12:5-7에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아브람이 그 땅을 통과하여 세겜 땅 모레 상수리 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 중간 지점 하란에 거하다가 다시 떠나라는 여호와의 명령을 받고 순종하여 가나안 땅에 도착한 최초의 장소가 세겜 땅 모레 상수리 나무라고 했는데 이곳이 바로 그리심산 아래인 것입니다. 이렇게 순종하자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축복하셨습니다.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말씀에 순종하자 복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복의 첫 번째 원리입니다.
신28장의 축복장에도 이 말씀과 순종의 원리는 정확하게 나타납니다. 신28:1-6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이라고 했고 반대로 신28:15을 보면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이라고 하여 축복과 저주가 바로 순종의 여부에 달렸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성경에 순종하는 자는 다 복을 받았습니다. 순종의 아브라함의 종착역은 축복이었습니다. 그래서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고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노아도 순종할 때 가족이 구원함을 받았고, 다윗도 순종할 때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순종하기로 굳게 다짐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복의 사람이 되기까지 한 걸음 한 걸음의 순종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한 걸음씩입니다. 성화에는 순서와 과정이 있습니다. 죄악 투성이의 인간에게 무슨 말씀부터 주어야 할 것인가 사람은 모릅니다. 그러나 한 말씀 순종하고 나면 다른 말씀이 주어지고 다른 한 말씀 순종하고 나면 또 다른 말씀이 주어집니다. 이것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설교자를 통해서 전체적인 윤곽을 보여주는 객관적인 말씀을 주시고 또 성령의 은사를 통해서 구체적인 현 단계에 필요한 인도를 받도록하여 주십니다.
마치 광야에서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신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이 때 반드시 해야 할 것이 순종입니다. 그래서 순종하고 순종하다 보면 머지 않아 어느덧 축복의 중심에 와 있게 되는 것입니다.
2.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그리심산은 아브라함이 애굽에서 다시 회개하고 돌아온 장소라는점에서 회개의 상징입니다. 창13:1-4에 "아브람이 애굽에서 나올새 그와 그 아내와 모든 소유며 롯도 함께 하여 남방으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 그가 남방에서부터 발행하여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했습니다.
이 말씀 대로 아브라함이 시험을 견디지 못하고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회개하고 돌아온 곳이 바로 벧엘과 아이 사이 그러니까 그리심산 아래였습니다. 이곳은 성경은 아브라함이 처음 장막을 쳤던 곳이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바로 그리심산입니다. 그리고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는데 이것은 신앙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더욱 큰 복을 주셨습니다.
영적으로 볼 때 애굽은 세상이요 애굽으로 내려감은 타락의 상징이요 애굽에서 온갖 수모를 당하고 돌아옴은 회개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아브라함에게 은금과 육축이 풍부했던 것처럼 죄만 떠나도 하나님께서는 풍성한 복을 주십니다. 돌아온 탕자에게 아버지가 모든 권리를 회복시켜 주심과도 같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그가 애굽에서 돌아오기만 해도 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단순한 예배 개념을 넘어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관계회복을 할 때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더 이상 그 땅이 아브라함과 롯이라는 두 사람을 용납할 수 없을 만큼 큰 복을 주셨습니다. 그 뿐 아니라 창13:14-17을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죄악을 회개하고 나아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성화에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는 무궁한 복락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3. 예배하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요4:19-20에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한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께 그리심산을 가리키며 그런 말을 했습니다. 이처럼 그리심산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예배의 장소요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배한 장소요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단됐을 때 비록 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제사했지마는 북이스라엘의 계속적인 예배의 장소요 바벨론에서 귀환한 후에도 사마리아 사람들의 변함없는 예배의 장소였습니다. 그러므로 축복의 그리심산이 예배와 관계 있다는 것은 예배가 축복의 중요한 요소라는 교훈을 줍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예배자를 만나주시고 예배자의 기도를 들으시며 예배자를 복주십니다. 아브라함이 복을 받은 것도 예배를 잘 드렸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바른 예배를 드린 아벨과 그 제물을 열납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예배를 잘 드릴 때는 언제나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성전에서 제사가 중단될 때 이스라엘에는 언제나 재앙이 왔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공식입니다. 이처럼 우리 심령 속에서도 기도와 예배가 그쳐질 때 영적인 복은 사라집니다. 그 대신 영적 전쟁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심령이 상하거나 죽거나 포로로 잡혀가 죄악의 종노릇을 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역사란 단순한 그 나라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의 영적인 상황을 나타내는 진리요 비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과 교회에 있어서도 예배가 그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의 희망은 예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얼마나 예배를 잘 드리느냐 우리 성도들도 예배 잘드려 복의 주인공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4. 충성된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또 그리심산이 어떤 것으로 유명합니까? 기드온의 아들 요담의 네 종류의 나무의 비유로 유명합니다. 삿9장에 요담의 나무 비유가 있습니다. 가기에 가람나무 무화과 나무 포도나무 가시나무가 나오는데 우리를 위하여 왕이 되라고 하여도 모든 나무들은 자기의 직분을 귀히 여기며 자기의 위치를 결코 버리지 않고 충성했지만 자기 직무를 모르고 요동했던 가시나무는 남도 죽이고 자기도 불이 나와서 타져 죽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성도들이 복을 받으려면 자기에게 주신 일에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작은 일에 충성할 때 큰 것을 맡기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작은 것을 놓치기 때문에 큰 것을 얻지 못합니다. 예언의 사역도 예언이 처음부터 강하게 나타는 경우는 드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기도하고 나면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낌이 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세미한 음성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것은 100% 내 생각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사람들이 방치하는데 방치하지 않고 그 사역을 계속하면서 혼자서 늘 기도하면 더욱 분명하게 나타나게 됩니다.
기도의 사역에 있어서도 그렇게 하십시오. 한 사람씩 위해서 늘 기도하면 나중에는 기도할 때마다 떠오르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느낌을 버리지 마시고 그것을 제목 삼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혹시 내 몸의 일부가 아프다면 그 부분을 안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나중에 알고 보면 신기하게도 그 사람이 거기가 아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혹시 심령이 답답하다면 그것이 풀릴 때까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깨닫게 하시는 일에 늘 충성하면 나중에는 더욱 풍성한 축복을 주셔서 더욱 분명히 알고 기도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설교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하면서 준비할뿐 아니라 강단에서 깨닫게 해 주시는 것에 민감해야 합니다. 강단에 서서 준비된 말씀을 전하지만 사이 사이에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이나 환상들이 꼭 내 생각처럼 자꾸 나타나는 현상이 있게 됩니다. 그런데 그 생각들을 보면 어디에서 왔는지 아주 좋은 생각들입니다. 설교자는 그 때 이 도우심을 무시하지 말고 충성할 때 하나님께서는 더욱 크고 풍성한 것을 주십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봉사하고 싶은 작은 마음이 있다면 그 감동 역시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능력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주실 때는 아주 미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세미한 음성이 있든 없든 일단은 자신이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으로 복을 주십니다.
<결론>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그리심산은 축복의 산입니다. 이 산은 축복만 한 산이 아니라 축복의 원리까지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회개하며 성화를 향해 나가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하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리고 작은 일에 충성된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우리들도 이 귀한 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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