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스크랩] {11월 7일,주일설교}*루스드라의 앉은뱅이/행 14:8-10절*

은빛그레이스 2010. 11. 7. 20:38
    {11월 7일,주일설교} *루스드라의 앉은뱅이* {본문/행 14:8-10절}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1월 들어 첫째 주일입니다. 날은 가을에서 겨울을 향해 달려 가고, 조금 있으면 대학을 꿈꾸는 학생들의 수능일이 다가오니 더 추워지는 느낌입니다. 오늘도 우리를 주님의 전에 불러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말씀으로 은혜받고 영광 돌리는 시간이 됩시 다. 술을 만드는 누룩을 밀가루 반죽 속에 넣으면 어떠한 현상이 일어나게 될까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가 일어납니다. 밀가루 반죽이 처음보다 몇 배의 크기로 부풀게 되는 것입니다. 많이 부풀려지면 질수록 그것은 더욱 맛있는 음식이 될 것입니 다. 복음이 세상에 전파되면 이와 마찬가지의 변화가 일어나게 됩 니다.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소란스러워지고 때로는 야단 법석 을 치게 됩니다. 복음이 들어가는 곳에는 반응이 일어나게 마련 인 것입니다. 세상이 진정으로 인간에게 기쁨과 맛을 주는 세상이 되기 위해 서는 복음이 필요합니다. 오늘의 본문에는 사도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를 고친 사 건이 기록되어 있거니와, 이는 복음이 세상에 들어감으로써 얼마 나 유익한 결과를 가져왔으며 인간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가져다 주게 되었는지 잘 말해줍니다. 본문을 중심으로 루스드라의 앉은뱅이가 처한 상황을 살펴보고 복음의 능력으로 그가 어떻게 일어서게 되었는지 잠시 생각해 보 기로 하겠습니다. 1. 체념한 인간이 보입니다. 현대인이 잃고 있는 여러 가지 병 가운데 하나를 든다면 그것은 '체념'이라는 병입니다. 작은 실패에도 스스로 체념하고 포기함으 로써 현대인은 죽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체념하고 자포자기 하는걸까요? 그것은 오늘 우리 시대가 처한 정치, 사회, 문화, 종교 등 전반에 있어서 어떠한 한계점과 위기의 상황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엄청난 정치 권력의 남용 과 구조악의 악순환, 25년마다 두 배로 늘어나는 세계인구, 지구를 500번 이상이나 초토화 시킬 수 있는 거대한 핵무기의 상존, 인간 의 이상과 가치관의 전도(前到)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잠 재하고 있는 한,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은 제 정신으로 살아가기 힘들 것입니다. 더구나 사회에 진출하려는 사람들은 많아지고 일할 수 있는 직장 은 줄어드니 더욱더 스스로 체념하고 포기하기에 이른 것이겠지요. 이런 삶 속에서 제 정신으로 살기보다는 차라리 체념과 포기를 통 해 모든 사실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 마음 편하다고 생각되는 것 입니다. 루스드라에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알 수 없고 다만 앉은뱅이로서 결코 걸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만을 성경에서 접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가 앉은뱅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그가 받은 삶의 상처가 얼마나 컷던가를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 자신은 물론이고 그의 주변에 있는 부모님이나 가족들 또한 그가 앉은뱅 이라는 사실 때문에 많은 아픔을 겪었을 것입니다. 그는 같은 또래 의 동료들이 서서 뛰놀며 마음껏 웃으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 마다 '나도 저렇게 일어서서 놀 수가 있다면'하고 탄식했을 것입니 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서기 위해서 온갖 노력도 기울여 보았을 것 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그는 다시 주저 앉을 수밖에 없었고 점점 더 절망과 흑암의 구렁으로 빠져 들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마 음의 상태가 지속되었을 때 앉은뱅이는 어떠한 생각을 갖게 되었 을까요? 그는 인생의 모든 소망을 포기하였을 때 오는 아픔에는 체념이 가장 좋은 치료제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루 스드라의 앉은뱅이에게 바울이 복음을 가지고 나타난 것입니다. 2. 복음의 능력을 체험합니다. 복음은 앉은뱅이로 하여금 계속 앉아 있게 하지 않았습니다. 사단은 그로 하여금 영원히 서지 못하도록 그의 다리에 힘을 빼놓 고 그의 마음까지도 현실에 타협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은 서서 살아가는 존재이므로, 복음의 능력은 불구상태인 그를 회복하게 역사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가지고 온 복음은 앉은배이의 오랫동안의 좌절과 포기로 인해 체념해버린 읹은뱅이의 짙은 어두움을 빛으로 비추 어서 그의 실상을 보게 해주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하나님 을 향하여 눈을 들게 함으로써 그에게 무한한 소망과 새로운 힘을 솟게 한 것입니다. 그는 날 때부터 걸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었으니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엉덩이를 땅에 비벼대면서 몸부림치며 살아간 것이 그의 삶의 전부였습니다.하지만 복음을 듣는 순간 그의 마음은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약동하는 힘과 소망이 그의 몸과 마음 속에 일기 시작하였습니다. 복음은 이렇게 큰 능력을 역사합니다. 그러 하여금 복음을 받아들이게 함으로 지 금까지 앉은뱅이로 살아온 슬픔과 포기하고 체념했던 것들을 말 끔하게 씻어내고 소망이라는 것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였으니 그 에게는 생애 있어서 가장 큰 기쁨이 되었을 것입니다. 3. 복음으로 인해 영혼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 사랑을
    가집니다. 한 영혼이 새로운 삶을위해서는 그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관심을 필요로 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듣고 있는 앉은뱅이를 보았을 때 그 에게 구원을 받을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감지했습니다(9절). 바울 은 말씀을 경험하고 있는 그를 주목하여 바라보았고 그 순간 그가 치료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고 확신한 것입니다. 본문을 보 면, 바울은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이 때 다른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아마도 바울에게 미쳤 다고 했을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로 태어난 사람에게 일어서 라고 했으니 미친 사람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말이니까요. 그러나 그 때 바울은 그에 대한 사랑과 동정의 마음이 말할 수 없이 사무 쳐 도저히 가만히 말할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회의와 불신과 좌 절로 똘똘 뭉쳐 있는 그로 하여금 그 모든 올무로부터 떨쳐 일어나 도록 하기 위한 외침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바울이 외친 것은 일종의 명령과도 같았습니다. 앉은뱅이가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과 간절한 염원에서 우러나온 명령이었습니다. 가만히 그에게 일어나보라고 하지 않고 바로 명 령했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에서 보았습니다. 실의와 좌절로 죽어가는 한 영혼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애틋한 동 정심이 없었다면 그와 같은 절규가 어떻게 나오겠습니까? 어쩌면 오늘의 세상에서 사람들은 사랑과 관심이 메말라 죽어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인간에게 있어 육체적 질병보다 더욱 무서운 병은 사랑의 결핍과 무관심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주 그리스도께 서는 완악하며 돌같이 굳은 죄인들을 구원하시사 사랑하며 살아 가는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 그 엄청난 십자가에 못박힘을 당햐셨 습니다. 그러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바울은 앉은뱅이에게 그대로 전했습니다. 그리고 복음으로 인한 한 가닥의 소망을 갖게 된 나 면서부터 앉은뱅이된 사람을 서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 음의 능력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을 사는 우리는 절망과 회의의 올무 속에서 허우적 거리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모든 것을 체념한 채 그저 물 결이 이는 대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어떠한 시도도 노력 도 하지 않고 그냥 앉아서 살아가는 것이 속 편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이 최선의 방법일까요? 아닙니다. 누구든지 스스로 체념하지 않는 한 소망이 있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한 좌절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앉아서 견딜 수 있을 만하다 하더라도 서서 걸으려고 노력한다면, 몇번 넘어 지는 한이 있어도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사슴같이 뛰게 해 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의심하고 믿지 않으면 절대로 기적은 없습니다. 오늘의 앉은배이를 보면서 우리에게도 소망과 희망이 있다는 것을 믿고 벌떡 일어서는 믿음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주후:2010년 11월 6일의 이른시간에 "가장낮은자 목사.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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