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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부흥회설교),범사(凡事)에 때가 있느니라. (전3:1-22절)

은빛그레이스 2010. 9. 6. 01:26

                       범사(凡事)에 때가 있느니라.  

                                           전3:1-22절. 93.492.190장. 3927 Bible 말씀연구소 박봉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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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실상을 다룸에 있어서 전도자는 먼저 우주 만물과 인생들의 삶이 모두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웁니다. 사람은 자기 삶의 진정한 주체를 알 때 비로소 자신이 처한 현실을 올바로 직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전도자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때”가 있으며 이러한 시기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제 아래 속했으며 어떤 일의 성취 또한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1.세상 모든 일에는 정해진 때가 있습니다.(1-8절),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12절)라고 했습니다. 첫째. 삶에는 시작과 끝이 있으며 이 모두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해 있습니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2절)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에는 시작과 끝이 있음을 말해 줍니다. 둘째. 살리는 일과 죽이는 일 허무는 일과 세우는 일은 전혀 상대적인 개념이지만 이 모두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해 있습니다.

 

  “죽일 때가 있고 치료시킬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3절),라고 했습니다. 셋째. 슬퍼하고 기뻐하는 일 역시 하나님의 주권에 속해 있습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4절),라고 했습니다.


  슬픔이나 기쁨은 억지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처한 상황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넷째. 이해관계나 인격적인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 역시 하나님의 주권에 속해 있습니다.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5절),라고 했습니다.


  다섯째. 얻고 간직하는 일과 잃고 버리는 일 역시 하나님의 주권에 속해 있다는 것입니다.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6절), 라고 했습니다.


  여섯째. 화합하고 분열하는 일도 하나님의 주권에 속해 있습니다.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7절),라고 했습니다.


  일곱째.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감정이 가장 기본적인 사랑과 미움, 그리고 이로써 발생하는 분열과 전쟁, 그리고 화합과 평화 역시 하나님의 주권에 속해 있습니다.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8절),고 했습니다.    


2.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수고하게 하셨습니다.(9-15절), 1)수고를 통해 영원을 사모하게 하십니다.(9-13절), “일하는 자가 그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9-10절),고 했습니다.

  

  전도자는 스스로 인생이 수고함으로써 얻는 유익이 없다고 전제 하고서 이처럼 유익 없는 수고를 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외도하셨기 때문이라고 밝힙니다. 인간의 수고를 “일”이라고 할 때 일 자체는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지으시고 그에게 에덴동산을 맡아 관리하도록 했을 때(창2:15) 그것은 축복이었습니다. 그러나 처음 사람이 타락하고 죄를 지으면서 죽음이 찾아왔고 이로써 인간의 일은 힘들고 고되며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만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수고가 헛되게 된 원인은 타락과 죄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 한 인간의 헛된 수고를 통해 영원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도록 하셨습니다.


  2)삶의 수고가 하나님의 선물임을 알 때 사람은 무의미와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고,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의 영원성을 깨닫게 될 때 그분을 경외하게 됩니다.(14-15절)

  

  “무릇 하나님의 행하시는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더할 수도 없고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으로 그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고 했습니다.


3.부조리와 모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합니다.(16-22절), 1)매사에 때와 목적이 있으며 이를 이루어가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말했던 전도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여전히 악이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16-17절),


  이 같은 지적은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를 근거로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조차도 그분의 주권 아래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실의 부조리와 모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 속에서 심판의 때가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하는 자는 짐승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18-22절),


  전도자는 인간이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환기시킵니다. 창조주에 의해 지어졌으며 유한한 존재라는 점에서 인간은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저희를 시험하시리니”에서 시험하다는 말은 고르다. 불순물을 찾아 없애다는 뜻으로서 사람의 행사를 살피고 드러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사람과 짐승이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하면서 전도자가 염두에 둔 것은 다음 두 가지입니다. -종국은 죽음입니다. -흙으로 말미암은 존재입니다. 그렇다고 본질상 사람과 짐승이 아무런 차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21절)고 했습니다.


  피조 되었다. 는 사실과 결국 죽을 것이라는 사실에서는 인간과 짐승이 마찬가지이지만 죽음 이후에 관해서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혼을 올라가고”라는 말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생기를 받았기에 그 영혼은 하나님 앞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짐승의 혼은 아래로 내려가고”라는 말은 죽어 흙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그 생명이 사라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망각하고 영혼 없는 존재처럼 산다면 그것은 짐승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결국 전도자는 죽음이라는 문제를 통해 어떤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최선의 삶인가에 대한 대답이 이끌어 냅니다. “그러므로 내 소견에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이는 그의 분복이라 그 신 후사를 보게 하려고 저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22절).고 했습니다.

 

  결론은 유한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현실적인 삶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즐기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할 이유는 첫째. 그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정하신 몫이며. 둘째. 삶 이후. 죽고 난 이후는 인간의 소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후의 주권도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 있습니다. 살아생전에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듣고 묵상하며 그 속에 기록된 것을 지켜 행함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되어서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성도의 복된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료출처 3927bible 말씀연구소
      출처 : 3927Bible 말씀연구소
      글쓴이 : 박봉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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