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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부흥회설교),내 말이 불같지 아니하냐? (렘23:23-32절)

은빛그레이스 2010. 9. 6. 01:25

                                                        내 말이 불같지 아니하냐?

                                                 렘23:23-32절, 234.235.379장.3927 Bible 말씀연구소 박봉웅 목사. 

 

고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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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聖經)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세계의 어느 책보다도 제일 많은 방언으로 번역된 책이요 세계의 어느 책보다도 더 제일 많이 팔리는 책입니다.(1,200방언). 요사이 말로 "베스트셀러"입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영적·정신적인 에너지입니다.


  몹시 급하여 택시를 탄다고 하더라도 주유소에 가서 에너지가 되는 기름을 공급받아야만 목적지를 향해 달려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에게 무엇보다도 필요(必要)한 것은 아버지의 집인 성전(聖殿)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의 양식으로 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생활의 힘, 영혼의 능력, 삶의 원동력이 되는 말씀을 공급받지 않고서는 생의 여로에서 실패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들은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能力)을 알아야 되고 또 능력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직접 읽고, 지킴으로써, 우리 모두는 참된 생명(生命)을 얻습니다.(계1:3). 본문에는 이러한 말씀의 소중함이 드러나면서 동시에 이에 비추어 말씀을 수용하지 못하는 인간(人間)의 한계(限界)가 소개(紹介)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을 생명으로 인도하기에 충분한데 그것을 지켜 행하지 못하는 인간의, 능력의 한계 때문에 말씀이 무용하게 되었고 그래서 결국 유대인들은 곧 있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1.성서는 세계 제일의 위대한 책입니다. 성서가 문예가 끼친 감화는 과연 세계 제일입니다. 옛날 이스라엘의 민족의 건국자이며 애국자였던 "모세"는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유모를 통해서 들었습니다. "사무엘"도 "다윗"도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들이었고,


  또한 성서가 오늘 현대 문명인 문학·음악·건축·회화·조각 등 문예에 미치는 위대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세계의 현대·정치·경제·문화·교육들이 모두 성경의 사상과 내용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성서를 '세계 제 1의 책'이라고 주저하지 안고 말합니다.


  우선 구약성서 첫 말씀 창1: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간단한 기록을 볼 수 있는데 이 말씀은 진실로 무엇보다도 위대한 문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간단한 말로써 높고 높은 세계를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지의 장대한 것을,


  철저히 인간의 언어로써 다 표시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보다도 더 위대하신 하나님을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성서 기자는 주저하지 않고 절대한 우주와 절대한 하나님을 말씀 한 마디로 대표하였으니 이는 성서가 아니고는,


  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고로 우선 우리 성도들만이라도, 성서에 오묘한 내용들이 다 들어 있으니 많이 보고 들어서 나의 진리를 찾아서 삶의 목표를 바로 세우시기를 바랍니다.


2.성서는 인간을 변화시키는 책입니다. 세상에는 위대한 책들이 물론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알고 구주를 만나서 새 사람이 되는 책은 성경 하나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계속 읽을 때 심령이 자라고 힘을 얻습니다. 성경을 읽으므로 모든 유혹과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어려운 일을 당할 때도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고 성서를 통해서 새로운 능력을 얻는 것입니다. 성서는 우리의 생활의 표준입니다. 전통도, 이성도, 어떤 감정도, 신앙의 표준일 수도 없습니다. 오직 성경만이 우리 신앙의 유일한 표준입니다. 이단과 사설과 사이비 종파가 횡행한 이때,


 우리가 어떻게 하면 신앙의 정도를 걸어갈 수 있을까요? 이런 문제는 성서를 읽고 그대로 행하면 됩니다. 성경만이 인간의 최고의 윤리를 가르쳐 줍니다. 최고의 도덕적 범죄를 제시합니다. 성서에 십계명으로부터 산상보훈에 이르기까지 우리 인간이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세상에서 해야 할 모든 규례를 분명하게, 똑똑하게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그러므로 성서는 꼭 읽어야 할 책입니다. 이렇게 성서는 우리로 사람답게 하고 생명의 양식이 되고 신앙의 모든 행위의 표준이 됩니다. 성경은 오랜 역사를 지닌 옛날 오래된 책 같지만 항상 새로운 책입니다.


  성경 가운데 새로운 진리가 무진장으로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성경 가운데 우리 인류가 찾아내지 못한 진리가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습니다. 16세기 암흑기의 종교 개혁의 위대한 선봉자인 "루터"는 갈3:11; 롬1:17절의 말씀에 감화 받았고, "존 칼빈" 역시 사53:5절의 말씀에서 감화를 받았으며,


  방탕하였던 "어거스틴"은. 롬13:11-13절까지의 말씀에 감화를 받아 회개하여 위대한 인물이 되었으며, "리빙스톤"은 행16:31절의 말씀을 읽고 아프리카의 개척자가 되었으며, "쿠퍼"는 롬3:25절의 말씀을 읽고 큰 감화를 받아 위인이 되었습니다. 말씀에서 많은 진리를 발견한 것입니다.


  18-19세기에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는 새 말씀이 발견되어서 세계 선교 사업이 일어났습니다. 20세기에는 교회는 하나라고 하는 이 진리가 발견되어서 신·구교를 막론하고 이른바 "에큐매니칼" 운동이 일어났고, 진리를 발견하여 성령의 계절을 기다리는 영적 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3.준엄한 하나님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 혹은 "엄중한 말씀"이라는 표현이 본 문에 6회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본래대로 해석하면 "짐" 또는 "짐스러운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본문에서는 본래의 뜻대로 "짐스런 말씀"이라는 뜻으로도 사용되었고,


  "엄중한 말씀"이라는 뜻으로도 사용되었는데 먼저 "엄중한 말씀"이라는 의미를 살펴보면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의미"에서 엄중하다는 것입니다. 이 표현을 사용한 분은 먼저는 하나님 자신이요, 둘째는 말씀을 받은 예레미야라고 볼 수 있는데 이 말씀을 사용한


  동기는 세상의 다른 말과는 달리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요 방편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인간이 타락하기 이전부터 이미 인간의 생사를 좌우하는 말씀이었습니다.(창2:16-17). 그리고 그것은 인류가 이미 경험한 바입니다.(창3:19절).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의 말씀이 재차 주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벌써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주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유대인들은 그러한 기회를 무산시킴으로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이와 같은 어리석음을 범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곧 불신자들입니다. 이스라엘의 백성과 거짓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경고적인 예언의 말씀을 얼마나 부담스러워했는지를 알게 해줍니다. 이들의 죄악이 너무나 관용되고 있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거나 하나님의 징계를 무서워하지 않은 채 하나님의 뜻을 자기들의 편의에 따라,


  멋대로 해석하고 있었기에 하나님의 엄중한 경고를 싫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진실로 하나님의 종인 예레미야에게 찾아가 '하나님의 경고가 어디 있느냐'고 반문하고 있는데 이들의 행동은 마치 어린아이가 투정을 부리는 듯하여 영적으로 나약하며 우둔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오늘날 성도들도 하나님의 경고를 꺼리는 경향이 있는데, 영적인 우둔함에서 깨어나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알아야 하겠습니다.


4.마음이 뜨거워지는 말씀입니다. 눅24:32절에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  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 하더냐"고 하였습니다. 당시 이들은, (1)예수님을 버리고 가는 길입니다. (2)실패하고 돌아가는 길입니다.


  (3)이 길은 공포에 싸인 길입니다. (4)이 길은 의문에 싸인 길입니다. 이때 웬 사람이 나타나서 그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두면서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제자들은 그분이 그들이 3년간이나 따라 다니던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슬픔으로 젖어 있었기 때문에 그 사랑하던 예수님을 몰라보았던 것입니다.

이런 그들에게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오셔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실 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걸어 오셨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에게 말을 걸어오는 예수님에게 비탄에 빠진 음성으로 답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의 예수님의 행적,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입니까? 제자들이 낯선 이 사람과 이야기하는 동안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 것입니다. 슬픔과 비탄에 젖어 있던 제자들에게 희망이 솟구치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마음이 뜨거워짐으로써 그들의 사명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째서 이런 현상이 나타났습니까? 그것은 '뜨거워진 마음'이란 '진리에 접촉된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즉 진리이신 주님을 만나고 말씀을 듣고 그분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에 있어서도,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진리이신 예수님과 접촉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삶은 싸늘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삶은 고통과 비애만이 자리잡을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이 우리 인생에 있어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과 만나서 뜨거워진 마음을 소유하고, 이 뜨거워진 마음을 가지고 진리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5.마음이 찔리게 하는 말씀입니다. 행2:37절에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러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선생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했습니다. 여기 '마음에 찔려' 하는 말은 '양심에 가책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를


  직접적으로 지적할 때 저들은 마음이 찔려지는 듯 아팠습니다. 이 양심의 가책이 귀합니다. '양심에 가책을 느낄 줄 모르는 사람'이라면 부끄러움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철면피'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더 악한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는 고로 소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죄를 지적 받고도 양심에 가책과 부끄러움을 느낄 줄 모르는 사람, 이 사람은 이미 그 심령이 죽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죄를 지적 받을 때 마음이 아파 양심에 가책을 느낄 줄 아는 것은 양심의 한 모퉁이가 그래도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인간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자입니다.


  그 영이 소생한 수 있는 증거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언제나 양심에 가책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양심에 가책을 느낀 사람들은 "어찌할꼬." 했습니다. "어찌할꼬." 는 실수를 저지른 사람이 후회하는 말입니다.


  저들은 무죄하신 예수를 공연히 군중 심리에 선동되어 십자가를 지우는 죄를 저질러 놓고 그 죄를 지적 받았을 때 "어찌할꼬."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후회와 염려의 말이나 그리고 자신의 힘으로서는 도저히 어떤 타개책이 없음을 깨달을 때 자기들의 힘으로서는 속수무책이기 때문에 "어찌할꼬." 하게 되었습니다.


  죄를 짓고 살 길이 막힌 사람은 "어찌할꼬."가 자연히 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어찌할꼬."라도 할 때 삶의 길이 열리게 됩니다. "어찌할꼬."도 없이 잘못을 범하고도 가책을 느끼지 않고 염려도 없고 후회하는 빛도 없고 아무런 느낌이 없다면 그런 사람에게야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죽음의 길 뿐이요 삶의 길이 열리지 않을 것입니다. 저들이 이구동성으로 "어찌할꼬." 하게 될 때 베드로는 저들에게 살길을 가르쳐 주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곧 주 예수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6.백성을 태우는 말씀입니다. 렘5:14절에 "그러므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그들이 이 말은 하였은즉 불지어다. 내가 네 입에 있는 나의 말로 되게 하고 이 백성으로 나무가 되게 하리니 그 불이 그들을 사르리라"고 했습니다.


  선지자의 권고나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아니하고 계속적으로 죄악의 길로 치닫는 유대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드디어 심판을 내리겠다고 선포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불"로, "유대 백성"을 "나무"로 비유하였습니다. (1)불로 임한 하나님 말씀입니다. 불은 하나님의 사람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불이 되게 하고 그 백성은 나무가 되게 하여 그 불이 나무를 사르듯이 그 말씀대로 그 백성들을 심판하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그 말씀이 아무 힘이 없는 것 같으나 이루어질 때는 맹렬한 불과 같이 권세가 있어서 모든 것을 심판하십니다.


  지금은 진리의 말씀을 무시하고 나아가도 괜찮은 것 같으나 그 말씀이 심판 날에는 큰 권세가 있어 죄인과 세상의 모든 것을 심판할 것입니다. (2)불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렘23:14절에 "그 불로 사르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분노는 극에 달했으므로 결국은 그들의 죄악을 소멸해야 할 필요를 느끼신 것입니다.


  "소멸"은 곧 "태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 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 자체가, 가지는 어쩔 수 없는 실존적 비극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이 죄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고초에서 우리 죄를 완전히 해결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죄인이요 또 죄를 짓는다고 해도 계속해서 성령의 힘을 통하여 죄를 이기고 태워 버려야 합니다. 14절절에서 "나의 말로 불이 되게 하고 이 백성으로 나무가 타게 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모든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받아야 할 시험이 있습니다. 이 연단의 과정을 성경은 종종 "불"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불같은 시험 속에서 방관하시지 않으시고 건져 주십니다. 그리고 위로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을 아시기 때문에 연단을 통해 우리로 더욱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7.하나님 말씀의 능력이란? 1)사람의 마음을 칼로 찌르는 것과 같은 힘이 있습니다. 히4: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더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과 뜻과 생각을 감찰하나니"라고 했습니다.


   2)우리를 중생케 하는 능력의 힘이 있습니다. 벧전1:23절에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9:7절에 "여호와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라고 했습니다. 3)하나님의 말씀은 신앙이 생기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롬10:17절에 "말씀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들으면 믿음이 생깁니다. 4)성결케 하는 능력을 주십니다. 시119:9절에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5)지혜롭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시19:7절에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고 하며"라고 했으며, 딤후3:15절에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시119:99절에 "내가 주의 증거를 묵상하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승하며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모든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6)마귀의 유혹을 이기게 하며 죄에 빠지지 않도록 보호해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마4:10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사단아 물러가라 주 너희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이에 마귀는 떠나고 천사들이 나와서 예수님께 시중들더라." 했습니다. 시119:165절에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고 했습니다.


  7)영생의 확증을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요5:39절에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네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요일5:13절에 "내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은 우리들에게서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가도록 하고 있는 것입니다.


8.말씀을 정리합니다. 딤후3:16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  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뜻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는데 게으르지 말고 매일 읽고 묵상함으로 하나님의 세미 한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성도가 되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바로 깨닫고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성도의 복된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료출처 3927bible 말씀연구소
      출처 : 3927Bible 말씀연구소
      글쓴이 : 박봉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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